민지라는 친구가 있다. 누가 봐도 일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일본 사람처럼 생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언니이다. 경민이라는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많이 도와주고 지금은 고시를 준비하느라 바빠 안 본 지 두 달쯤 된 오빠이다. 원경이라는 친구가 있다. 공모전에서 알게 된 중어중문학과를 전공하고 중국어를 아주 열정적으로 배우는 언니이다.


세 사람 중에 내가 한국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누군지 한번 찍어 보자.

가끔 한국 사람에게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을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에게 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인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라는 점에서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반면에 한국 사람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 사람이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사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일반화시키면 지나치게 절대적인데 대부분 한국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은 한국 사람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요인보다 객관적인 요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여기는 한국이고 우리가 만나는 한국 사람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국에서 자라왔다. 어릴 때부터 사귀던 친구가 있고 활동하던 지역이 정해져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하나의 외부 요인이며 언젠가 한국을 떠나기에 하나의 짧은 인연이다. 타국에 와 있는 우리가 그들을 의지할 수 있으나 그들이 우리를 의지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객관적인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 사람을 만날 때 상대적인 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대화를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그들도 우리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으면 하는 것이 그저 바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움을 겪으면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반면 그들은 예전부터 사귀던 친구에게 의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한국인인 상대가 우리에게 마음을 털어놓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달라진다. 그 속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


내가 이해하는 가장 친한 친구는 서로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는 친구이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남들과 나누지 못하는 슬픔을 나누며,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자기 나라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그런 친구인데 한국에서는 어디 쉬운가. 그래서 나는 민지 언니를 만난 것이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행운이라고 여긴다. 만난 지 3개월쯤 된 민지 언니와 약속을 잡기만 하면 밤의 열차가 끊길 때까지 할 말이 해도 해도 남는다. 서로 걱정을 해 주고 남들과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돼 준다. 만약에 내가 일방적으로 언니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면 서로 친한 친구라고 하지 못했을 터다. 물론 이와 같은 만남에서는 상대적으로 행동하는 것 외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내가 상대방의 모국어를 어느 정도 잘해야 하거나 상대방이 내 모국어를 어느 정도 자해야 한다. 아니면 만나기 쉽지가 않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해야 한다. 필수 전제는 그 두 가지 중의 하나여야 한다.


한편 오로지 언어 학습을 목적으로 삼아 우리를 만나 주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원경이란 중어중문하고가를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지 나와 중국어로 대화하고자 하는 사람을 친구로 만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아, 이 사람은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를 만나 주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상대방이 나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목적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물러나게 된다. 내가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중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언어 학습을 목적으로 시작된 만남보다 나는 그저 상대방이 나를 먼저 친구로 삼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일 뿐이다. 원경 언니처럼. 원경 언니는 중국인 유학생 세 명과 한국인 학생 한 명이 한 팀으로 한 '합계 DIY 서울여행 UCC 공모전'에서 만나 같은 팀으로 활동하게 된 언니이다. 같이 활동하는 짧은 시간에 언니는 중국어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면서도 우리를 진심으로 친구로 대해 주었다. 우리 또한 착한 언니를 친구로 삼았고 중국어에 대해 물어보면 아주 적극적으로 답해 주었다. 언니와는 공모전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연락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나는 아직까지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 중에 언니에게만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외국인에게 한국인 친구란?'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국인에게 한국인 친구도 그저 친구라는 것이다. 사람의 의식 구조 속에는 나라는 개념이 하도 굳게 박혀 있어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국적에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국적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속한 문화권을 말해 주는 것이라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은 국적을 갖기 전에 그저 사람일 뿐이다. 친구라는 것에 있어서는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이 국적을 앞서간다. 그것을 이해하고 외국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만이 그 외국인 친구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는 것이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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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너스

    2013.11.15 09:18 신고


    친구사이에는 국적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같아요~ㅎㅎ

  2. 와코루

    2013.11.15 10:56 신고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ㅎㅎ 즐거운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