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밀


그 해의 겨울은 유달리 집요하게 악다구니를 쓰며 버티고 있다. 우렁찬 소나기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겉늙은 봄이 겨울을 물리치며 자리를 차지할까 싶더니 어느새 초여름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연은 봄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다.


마치 새빨간 거짓말처럼 붉게 물들여진 천이 세월의 흔적이 깊이 묻어난 얼굴을 덮는 순간, 간신히 벽을 기대며 바들바들 떨던 몸이 마치 공기가 빠진 풍선마냥 힘없이 미끄러져 주저앉게 된다.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 백지마냥 창백해지고, 초점을 잃은 두 눈에는 눈물이 쉴 새 없이 뛰쳐나왔다.


그 해 겨울, 그녀는 할머니의 죽음을 비밀로 삼게 됐다.





어릴 적부터 친구마냥 곁에 있어주며 부모의 역할까지 맡아주신 할머니는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존재였다. 항상 "1등"으로 학교에 도착하고 저녁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면서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허리가 반달처럼 굽혀진 할머니가 있었고 오른 손에는 언제나 따뜻한 기온을 가져다 준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왼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쪼여 땀이 절로 흐르는 여름이든 눈이 펑펑 내려 걸음조차 걷기 힘든 겨울이든, 할머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밝은 아침이든 어두운 밤이든 항상 그 시간에 그녀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항상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어려서 그런가, 그녀는 할머니가 준 이 사랑, 당연하고 또 영원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그녀의 옆자리를 지켜온 할머니가 반신 마비로 침대에 눕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할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이제는 남의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가 미웠고, 그녀를 보면 계속 옆으로 오라고 하는 할머니가 귀찮았으며, 반신 마비 때문에 한 쪽 팔 다리밖에 쓸 수 없기에 쩔쩔매며 걸어 다니면서 남의 손짓을 받는 할머니가 창피하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할머니도 느꼈다. 곁으로 오라고 할 때 항상 찌푸리는 그녀의 얼굴, 학교에서 다녀오는 그녀를 불편한 몸으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싫증을 내는 그녀의 눈빛, 그리고 손을 잡으려고 할 때 슬쩍 빼내는 그녀의 손짓, 할머니는 다 알고 있었다. 입에 넣으면 녹을까 봐 주머니에 넣으면 떨어질까 봐 아끼고 예뻐했던 손녀딸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몰랐었다. 웃는 얼굴 뒤에 울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을......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할머니의 사랑, 영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느새 할머니의 곁에서 쫄쫄 따라다니던 그녀가 여자아이에서 훌쩍 소녀로 커버렸다. 하지만 할머니의 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심각해졌다. 그녀를 본체만체하고 그녀가 손을 잡아 줘도 더 이상 흐뭇한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녀를 잊어가고 있었다. 슬픈 기억은 버리고 어릴 적 자기의 분신마냥 따라다니던 그녀를 기억하면서, 할머니는 그녀를 "비밀"에 숨겨두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숨결이 거칠어진 할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간다......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어릴 적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게 철부지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멀리서 할머니의 병변 소식을 듣고 병원에 도착한 그녀가 할머니 옆에서 쭈그린 채 땅에 앉아 있을 때, 할머니는 이미 그녀를 잊어버렸다. 눈물이 할머니의 모습을 가릴까 봐 그녀는 손으로 닦고, 드디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할머니가 자기에게 준 사랑은 당당하지만 당연하지는 않고 영원하지만 또한 영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 할머니는 사실(死神)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마치 새빨간 거짓말처럼 붉게 물들여진 천이 세월의 흔적이 깊이 묻어난 얼굴을 덮는 순간, 간신히 벽을 기대며 바들바들 떨던 몸이 마치 공기가 빠진 풍선마냥 힘없이 미끄러져 주저앉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백지마냥 창백해지고, 초점을 잃은 두 눈에는 눈물이 쉴 새 없이 뛰쳐나왔다.


할머니는 그녀를 자신의 비밀상자에 파묻었다. 말 한마디 없이......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후회하곤 한다. 그리고 또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후회할 일을 만들곤 한다.

당신의 비밀상자에는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지만 그 비밀 속의 후회했던 기억 - 당신도 나처럼 아직 그 후회했던 기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나요?

글쓴이: 심해연 (중국)






신고

About the Author - 타일러 라쉬

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ntact Me: 운영자메일주소




  1. 2014.01.15 19:48


    비밀댓글입니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