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일리야 (러시아)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백인인 외국인을 보면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받침해 주는 역사적 · 문화적 · 사회적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미국인이라고 항상 대우를 받는 나는 매번 속상하기도 하고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다. 한국 TV나 수많은 어학원 광고를 보면 외국인을 만날 때 hello라고 인사하자!'고 하는 것은 대부분이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에게는 "왜 '헬로우'라고 인사를 해야지?"라는 질문을 한국인에게 던졌더니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외국이면 무조건 영어'라는 잘못된 개념을 고쳐야 할 때가 2014년인 지금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이태원 악세사리 가게에서 일하는 판매원과 재미있는 대화가 있었다. 내가 물건을 보면서 가게를 돌아다녔는데 40대중반처럼 보이는 아주머니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총각 잘 생겼어요

«, 감사합니다»

«아이구 참, 한국말도 잘하시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 살면서 매일매일 듣는 질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귀에 박힌 인사였다. 보통은 러시아에서 왔다고 바로 알려주고 주제를 바꾸곤 했는데 그날따라 네번째로 들은 질문이라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바로 답을 안 했다.

 

«어디서 온 같아요

아주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바로 답을 했다.  

«미국». 그녀의 말에는 아무런 의심, 아무런 의문의 흔적도 없었다. 누가 봐도 틀림 없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

미국 아닙니다

미국 아니라고?”

, 미국 아닙니다

진짜 미국 아냐?”

, 진짜 아니예요

그러면 어딘데?!”

이 질문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넓고 넓은 지구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있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이 아주머니에게는 신비롭고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던 것 같았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왔죠

아주머니는 5초 동안 열심히 생각하고 중학교때 지리학 수업을 기억하려고 하는 노력이 얼굴에 쓰여 있었다.

독일

아닙니다

프랑스

아닙니다

영국

아닙니다

유고슬라비야

뜻밖의 답이었다. 유고슬라비야라는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진 지 10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그것도 아닙니다

캐나다

아닙니다

15분 후에는 유럽, 북미, 남미…  안 부른 나라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세계지도 지식 수준은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신기한 일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인 러시아를 안 불렀다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

아닙니다

총각, 도대체 어디서 왔어? 내가 다 불렀잖아!”

제 나라를 안 부르셨는데요…”

 

아주머니는 꼼꼼히 5초동안 나를 다시 살펴봤다.

네팔

. 내가 네팔사람처럼 생겼어요?!

저 어떻게 네팔사람이에요! 백인인데…”

나야 모르지! 어디서 왔어?”

러시아에서 왔습니다

아아아! 러시아! , 북극에 있는 나라!”

북극에 있는 나라라니요!”

그럼? 러시아까지 얼마 걸려?”

제가 사는 블라디보스톡까지는 1시간반 정도 걸립니다”.

?!”

그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새로운 정보였다.

“1시간반?? 러시아는 유럽쪽에 있는 나라가 아냐?”

유럽쪽도 있고 아시아쪽도 있죠. 러시아는 큽니다”.

아주머니가 내 말을 믿지 않은 것이 눈에 확실히 보였다. 평생동안 러시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 왔던 이 아주머니의 생각은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가게에서 기분 좋게 나왔다. 오늘은 외국인이 백인이면 무조건 미국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최소한 한 사람 머리에 심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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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 타일러 라쉬

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ntact Me: 운영자메일주소




  1. 체카

    2014.03.25 12:43 신고


    ㅋㅋ 옷으면서 잘 읽었습니다.

  2. 이하은

    2014.07.25 04:23 신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외국사람들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모른다고 속상해하다가 요즘 한류로 알려졌다고 기뻐하는데 정작 우리는 더 외국에 대해 아는게 많이 없던 거 같아요. 뭐.. 그동안 외국인이 한국에 많이 없었기 때문에 우물안의 개구리였지만.. 이제는 우리도 이 넓은 세상을 차츰 알아가겠죠?

  3. 미정

    2014.07.27 00:29 신고


    허를 찔린 느낌이다. 내가 미처 감지 못한것을 일깨워준 일리야씨께 감사드립니다.

  4. 채세령

    2014.07.31 00:24 신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가면 일본인 중국인 소리 많이 듣는다던데, 아무래도 인지도의 차이도 잇지 않을까요?? 웃음이 계속 나오네욯ㅎㅋㅋ잘보고 갑니다!

  5. 이수연

    2014.08.08 13:45 신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읽기전에 미리 러시아 라는 힌트가 없었다면 저도 글 속의 아주머니와 같이 반응했을것 같아요 .. 다음부턴 러시아도 염두에 두겠습니다. 이태원 아주머니니까 네팔 아르헨티나 까지 나오는거지 평범한 동네 였으면 거기까지도 안나왔을거에요 ㅎㅎ

  6. 정연금

    2014.08.11 01:52 신고


    옛날 냉전시대의 오고 갈수 없는 나라였던 '소련'을 기억하는 중년 이상의 세대에겐 러시아가 아직 멀게만 느껴지지요.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7. ㅋㅋㅋㅋㅋ

    2014.08.21 03:19 신고


    이 글이 젤 재밌어 ㅋㅋㅋㅋㅋ

  8. shiho4869

    2014.10.15 23:02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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