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야기


이번 주에 주어진 주제는 사랑이다. 나는 지금 친구와 술을 먹고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술기가 조금 올라오는 이 상태에서 사랑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딱 좋은 것 같다. 그러니 오늘은 사랑에 대해 한번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자.





친구가 말하였다.

"사람은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 너무 힘들지만 이해해 주고 참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사랑한다면."


철학에서는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인간에게 최고선은 무엇인가?" 인류 사회에는 선과 악이 있다. 인간이 선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자연적인 법칙이라면 최고선, 즉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철학자들은 흔히 덕이나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덕스러운 삶 또는 행복한 삶은 어떠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을 던져 보자. 나는 행복한가? 나는 언제 행복이라는 감정이 느껴지는가?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며, 행복한 삶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자.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정의를 내린다. 사랑이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순히 상대방에게 잘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을 보고 달려 가서 대신 들어 주거나, 친구가 아프다고 해서 "괜찮아?", "밥 챙겨 먹으라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문자를 잔뜩 보내면서 걱정하거나, 여자친구가 야밤에 라볶이를 먹고 싶다고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에서 출발해 라볶이를 들고 집 앞에서 나타나 주거나, 집에서 키우는 식물에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고 이야기도 해 주는 등, 우리는 보상을 바라면서 그리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용돈을 받으려고 짐을 들어 주거나 노트를 빌리려고 걱정하는 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처럼 다른 목적성이 섞여 있는 행위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일방적이다. 상대방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사랑은 상호적인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흔히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무조건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사랑이 지나쳐 과잉보호하는 것이 자식에게 독이 된다는 지적을 받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인간은 사랑할 줄 아는 존재이다. 실재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도 상대방에게 잘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에 인간은 사랑할 줄 안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을 할 때 우리는 마음의 뿌듯함과 기쁨을 가지게 된다. 인간이 그러한 정신적 행위를 통해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완전성을 느끼기 때문에 사랑은 자족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여기서 가질 수 있는 질문 하나가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그 행위 자체가 자족적인 것이라면 인간은 왜 사랑 때문에 불행해지거나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잘 생각을 해 보자.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을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연인들의 이야기로 예를 들자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문자를 보고 바로 답해 주지 않거나 보자고 하면 회식이라고 하거나, 기념일을 깜박하는 등 여자들이 하도 자주 화내서 남자들을 미치게 하는데, 실은 여자들이 화나는 이유는 언제나 하나이다. 세상에는 여성보다 더 불안한 동물이 없을 것이다. 흔히 남자친구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여자친구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묻는데, 남자가 이야기를 하면 여자는 "그게 아니잖아"라고 화를 절대로 풀지 않는다. "아 미쳐버리겠다", 여자친구가 화나는 이유를 늘 알 수 없는 남자들은 생각한다. 여자들은 만약에 상대방에게 내가 사랑할 만큼의 사랑을 받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불안해진다. 실연은 왜 아픈가? 내가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사랑을 받지 못해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해서 잘해 주는 것이지만, 그 동시에 우리는 그리 행동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수반될 것이다. 인간은 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 속에는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신생아를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안아주는 것에 안심되는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을 사랑에 대한 욕망 때문이며 생득적인 것이다.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너가 어떻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또한 너가 어떻든 나는 너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사랑이 맹목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기적인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맹목적인 사랑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또 다른 본성, 이성에 의한 것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해도 만약에 그것이 너에게 부담이 된다면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겠다. 내가 너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도 너가 지금 힘든 상황이라면 나는 참겠다. 결국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도 지금 힘든 상황이라면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겠다, 친구가 한 말처럼.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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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7 11:21 신고


    짱입니당

  2. 2013.11.27 22:11 신고


    멋져요. 사랑은 일방적이다. 공감되는 말입니다

내가 살던 곳에는 가을이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가을은 늘 청록색, 황금색, 빨간색의 화려한 단풍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우리 고향에는 단풍이 없다. 길가의 나무들은 사계절에 따른 변화 없이, 잎 하나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은 초록색 모습으로 서 있다. 해마다 달라지는 것은 나무의 나이와 그의 높이일 뿐이다. 교과서에서 단풍으로 가을의 모습을 익힌 나에게 우리 고향에는 가을이 없다





한국 와서는 가을이 들 때마다 아름다운 단풍 경치를 구경하러 갔었다. 올해도 조금 늦었으나 오랜만에 가진 여유로 카메라를 들고 단풍을 찍으러 떠났다. 그리고 떠나가 전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우리의 대화 속에 이러한 내용이 나왔다.


"나는 그 사람들이 좋아. 그 사람들은 좀 특이해."


"너는 특이한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갑자기 머리에 뭔가를 맞은 느낌이 들고 전에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인데 일반 한국 사람하고 달라."라고 나는 말했다. "그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남의 지적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속한 문화권을 객관적으로 비판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그랬구나, 내가 그 친구들이 좋은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머릿속에서 한번 정리를 해 봤다.


가끔 한국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한국 문화가 우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자문화중심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성찰이나 비판 없이 이를 당연시하는 태도이다. 물론 나도 중국의 문화가 매력적이라고 여기듯이 자기 나라의 문화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좋고 안 좋은 면이 있는 법이니 비판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학기 초에 교수님은 우리에게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를 읽고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 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나 빼고는 듣는 사람이 모두 한국 사람인 강의이며,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다음 강의 때 교수님이 들어와서 약간 쓴 웃음을 지으면서 농담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 학생 중의 누가 나를 신고했다며? 신고하지마, 나 힘들어. 한번 갔다오면 얼마나 힘든데."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를 몰랐다가 저번 주 강의에서 다시 자본주의의 내용이 나와서 교수님은 물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묻자. 자본주의를 비판하면 안 돼?"


물론 이것은 예를 들은 것뿐, 내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중에 어느 쪽은 응원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그 당시 내가 기뻤던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그리 현명한 스승이 있다는 것이다. 교수님의 말대로 우리 사회가 어떤 정치체제로 운영되든 우리는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문제점을 예상하고 그에 해당한 대처를 세움으로써 우리의 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했는데 친구가 한 말이 이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좀 그래. 비판을 잘 못 받아." 외국인인 우리가 한 말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한 말이었다. 지적을 받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해 주지 않다는 면에서 나는 "특이한" 내 친구들이 좋다. 그들은 한국에 관한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개관적으로 비판할 줄 알고 또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긴 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가을을 찾으러 떠났다.


올해는 한국에서 보낸 3년째 가을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동경하던 가을을 그대로 그려 주는 한국이 좋다. 또한 3년째의 가을에 나를 특이한 내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것에 너무나 고맙다. 가을의 끝은 다가오고 있으며 겨울은 멀지 않았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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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라는 친구가 있다. 누가 봐도 일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일본 사람처럼 생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언니이다. 경민이라는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많이 도와주고 지금은 고시를 준비하느라 바빠 안 본 지 두 달쯤 된 오빠이다. 원경이라는 친구가 있다. 공모전에서 알게 된 중어중문학과를 전공하고 중국어를 아주 열정적으로 배우는 언니이다.


세 사람 중에 내가 한국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누군지 한번 찍어 보자.

가끔 한국 사람에게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을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에게 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인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라는 점에서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반면에 한국 사람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 사람이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사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일반화시키면 지나치게 절대적인데 대부분 한국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은 한국 사람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요인보다 객관적인 요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여기는 한국이고 우리가 만나는 한국 사람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국에서 자라왔다. 어릴 때부터 사귀던 친구가 있고 활동하던 지역이 정해져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하나의 외부 요인이며 언젠가 한국을 떠나기에 하나의 짧은 인연이다. 타국에 와 있는 우리가 그들을 의지할 수 있으나 그들이 우리를 의지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객관적인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 사람을 만날 때 상대적인 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대화를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그들도 우리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으면 하는 것이 그저 바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움을 겪으면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반면 그들은 예전부터 사귀던 친구에게 의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한국인인 상대가 우리에게 마음을 털어놓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달라진다. 그 속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


내가 이해하는 가장 친한 친구는 서로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는 친구이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남들과 나누지 못하는 슬픔을 나누며,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자기 나라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그런 친구인데 한국에서는 어디 쉬운가. 그래서 나는 민지 언니를 만난 것이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행운이라고 여긴다. 만난 지 3개월쯤 된 민지 언니와 약속을 잡기만 하면 밤의 열차가 끊길 때까지 할 말이 해도 해도 남는다. 서로 걱정을 해 주고 남들과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돼 준다. 만약에 내가 일방적으로 언니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면 서로 친한 친구라고 하지 못했을 터다. 물론 이와 같은 만남에서는 상대적으로 행동하는 것 외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내가 상대방의 모국어를 어느 정도 잘해야 하거나 상대방이 내 모국어를 어느 정도 자해야 한다. 아니면 만나기 쉽지가 않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해야 한다. 필수 전제는 그 두 가지 중의 하나여야 한다.


한편 오로지 언어 학습을 목적으로 삼아 우리를 만나 주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원경이란 중어중문하고가를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지 나와 중국어로 대화하고자 하는 사람을 친구로 만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아, 이 사람은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를 만나 주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상대방이 나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목적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물러나게 된다. 내가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중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언어 학습을 목적으로 시작된 만남보다 나는 그저 상대방이 나를 먼저 친구로 삼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일 뿐이다. 원경 언니처럼. 원경 언니는 중국인 유학생 세 명과 한국인 학생 한 명이 한 팀으로 한 '합계 DIY 서울여행 UCC 공모전'에서 만나 같은 팀으로 활동하게 된 언니이다. 같이 활동하는 짧은 시간에 언니는 중국어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면서도 우리를 진심으로 친구로 대해 주었다. 우리 또한 착한 언니를 친구로 삼았고 중국어에 대해 물어보면 아주 적극적으로 답해 주었다. 언니와는 공모전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연락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나는 아직까지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 중에 언니에게만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외국인에게 한국인 친구란?'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국인에게 한국인 친구도 그저 친구라는 것이다. 사람의 의식 구조 속에는 나라는 개념이 하도 굳게 박혀 있어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국적에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국적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속한 문화권을 말해 주는 것이라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은 국적을 갖기 전에 그저 사람일 뿐이다. 친구라는 것에 있어서는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이 국적을 앞서간다. 그것을 이해하고 외국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만이 그 외국인 친구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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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너스

    2013.11.15 09:18 신고


    친구사이에는 국적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같아요~ㅎㅎ

  2. 와코루

    2013.11.15 10:56 신고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ㅎㅎ 즐거운하루되세요^^

수능을 세 번 치고 고려대로 들어온 동기가 있다. 수능을 세 번 친 이유를 물어보면 "그때 추구하는 게 있었는데 계속 실패했으니까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 싶어서 고대로 왔어"라고 말했다. 그말은 듣고 "아, 모두가 들어오려고 난리치는 명문대인 고대는 이 친구에게 최선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 친구가 바라는 최선,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말투를 들어보면 서울대는 아닌 것 같다. 고려대보다 위인 학교는 서울대일 뿐인데 고대로 들어와 있는 그에게 최선이 서울대가 아니라면, 그가 꾸미고 싶었던 미래는 결코 학교 랭킹 또는 수능 성적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에게는 인생의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꼭 명문대를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수능은 아니지만, 호주에서 대학입학시험을 치고 좋은 성적을 버린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최우수상까지 타고 97.5/100의 대학입학 성적으로 호주의 어느 대학이든 입학할 수 있었던 그는 명문대에서 온 입학제의들에 거절하고 호주를 떠났다.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하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보증은 없으나, 그리 될 수도 있다는 기회에 거절한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났어야 한 그는 대체 다른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한국어를 아예 모르는 그는 한국으로 와 어학과정을 걸쳐 지금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에? 철학과? 왜 남들이 탐나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해서 철학을 배우러 한국으로 왔어야 하는 것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그에게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 본 대학입학시험은 그저 호주 유학생활을 잘 마무리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본 시험일 뿐이다.


대학입학시험을 안 본 친구가 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대신 자동차전문학교를 다니고 지금은 잘 나가는 타일 회사의 영업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학력지상주의인 사회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남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며, 더 많은 차가운 시선을 느낀 그가 지금 이 자리까지 걸어온 길은 결코 평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노력하고 있는 그에게 대학입학시험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녀서 대학입학시험을 보고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쳐도 고등학교 3년과 대학 4년 과정에 드는 돈과 시간은 그저 감당하지 못할 부담일 뿐이며,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해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대학입학시험은 그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수능,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줄임말. 이와 같은 평가 시스템은 미국의 SAT를 비롯해 세습제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개인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다. 시험을 보고 대학에 합격한 자들은 능력자이며, 남들보다 좋은 직장을 다닐 만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개인이 갖고 있는 재주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는 능력주의사회이다. 한국처럼.


나는 한국인 학생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오로지 수능을 잘 보기 위해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학교, 학원, 집 세 군데를 오가면서 공부에만 집중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원을 다닌 적이 한번도 없었고, 한번은 정말 수학을 너무 못한다는 생각에 과외 선생님을 구해 왔는데 역시 나에게 안 맞는 것 같아서 수업을 한 번만 듣고 접게 됐다. 공부하느라 하루하루 6시간 밖에 안 자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내일이면 수능이다. 진심으로 모두가 잘 됐으면 좋겠다. 단지,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이 있다면 수능이 시작도 끝도 아니라는 것이다. 잘 쳤다고 해서 인생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잘 못 쳤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생길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리 하고자 한다면.


수험생 여러분, 서울리즘과 함께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모두들 파이팅하고 시험을 무사히 잘 마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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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꿈을 잃었을까요?

학교 축제 때 틀어 준 영상이 생각난다. 활기 넘친 대학생들이 몇 천 명 모여 있는 운동장. 날이 캄캄해서 그런지, 스크린이 더 잘 보이고 영상의 소리가 똑똑히 잘 들린다. '꿈이 뭐예요?' 학교를 견학하러 온 고등학생들에게 물었다. 의사, 대통령, 선생님... 그들의 목소리에는 명확함과 순수함, 그리고 열정이 들렸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넌 꿈이 있어?" (여학생 한 명이 웃으면서 옆의 친구에게 물었다)

... (침묵)

"언제 잃었는지 기억 안 나요."

"없어요."

대학생인 그들의 답 속에는 안타깝게도 무력함과 막연함 밖에 들릴 수 없었다.

영상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때 명랑하고 꿈이 있는 우리는 언제부턴가 꿈을 잃었다. 영상이 계속 이어져 가면서 뜨거운 축제 분위기는 잠깐 가라앉고 모두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시간을 가졌다. 나는 꿈을 잃었을까?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학업 또는 취업에 대한 압박 때문에 꿈이 없다는 주장을 많이 한다. 실은 한국뿐만 아니라 입시위주적인 교육과 취업난이 심각한 문제로 돼 가고 있는 한중일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비슷한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진정으로 젊은이들에게 꿈을 키울 수 없고 희망을 줄 수 없는 땅인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어학연수를 가려고 하는 사람들, 평생 한국에 살아오면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적 압박에 해방되려고 하는 사람들,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적응이 잘 안 되는 사람들.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들이 그리 하고자 하는 이유는 한국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큰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한국은 그토록 슬픈 땅인가?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이 있다고 하면 한국에 남고 싶어하는 외국인도 있다. 3년 간 여기서 사귀고 헤어진 외국인 친구가 많았는데 이미 떠난 그들에게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3개월 만에 또 다시 학업의 목적으로 온 친구가 몇 명이 있었고, 그것이 안 되는 친구들은 적어도 거의 한 번씩 여행을 다녀갔고, 여행을 다닐 여유조차 없는 친구들은 한국이 그립다거나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토록 한 나라에 남고 싶어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희망을 키워 주고 그 땅에서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평범한 나로 돌아갈 것 같다", "한국에서 학교를 창립하고 교장 선생님이 되고 싶다", "기획사로 들어가서 노래하고 싶다",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내가 발견된다"... 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한국에 남고 싶어하는 이유는 같다. 한국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땅이기 때문이다.

어떤 곳이든 남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 또한 분명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 남아 꿈을 꾸는 외국인들은 한국이 꿈을 키워 줄 수 있는 땅이라고 말해 준다. 그 와중에 꿈을 아직 안 잃은 한국인 대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음악에 열광하는 친구는 악보를 차리고, 법학을 전공하는 선배는 기자가 되고, 동양에 관심이 많은 후배는 동아시아에 대해 연구하는 교수가 되고, 자기가 모은 돈으로 뮤지컨 관람을 취미로 키우는 동기는 뮤지컬을 기획하고... 그리고 "하고 싶은 거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동생 또는 "내가 말하는데 나는 정말 나중에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사람이 될 거다"라고 한 오빠. 멋진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이다. 또한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멋져 보이는 그들이다. 한국의 가능성은 한국 땅에서 꿈을 꾸는 그들에게 있으며 한국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다.

그러한 한국에서 당신의 꿈은 뭐예요?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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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 엄숙하고 웅장한 느낌이 나며 위대한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줄 알았던 이 단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와는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자로서 일반인들에게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키는 사명감이 느껴지며, 서울리즘의 집필진으로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 주는 사명감이 느껴지고, 아무런 단체에 속하지 않고 그저 현대 사회의 일원인 나로서는 동아시아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에 한 몫을 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느껴지고 있다. 더불어 살자는 사회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하나로 되고자 하는 의식이 결핍돼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 온 이후부터 많은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과 어울리며 나는 한 · 중 · 일 간의 갈등과 마찰에 있어서 그러한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진다.



이번주에 서울리즘을 홍보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길거리로 나가 설문조사를 실행했다. 사람들에게 조사한 것 중에 '외국인이 본 ○○이/가 궁금하다'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의외롭지 않게도 위안부와 독도라는 답이 나왔다. 이는 어떤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에게 다루기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일본 친구와 제주도에 갔다 왔는데 거기서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는 우리 일행 중에 일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비난을 했다. 아저씨는 흥분한 상태에 빠지고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듣기만 했다. 그런 상황은 한국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분명히 뭔가 잘못되고 있다. 한발 물러서서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지금 이 그림은 분명히 우리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하나가 되고 조화로운 사회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상호적인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상호적인 소통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우리는 한 자리에서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잘못된 자리에서는 잘못된 견해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교수님이 위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다룰 때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그것을 듣고 학생들이 밑에서 비웃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동아시아의 향후 교육 방향을 주제로 하는 토론 콘테스트인데 중국 대표팀 없이 한국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이 일방적으로 검색 자료를 가지고 중국의 교육을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잘못을 알아야 바로잡을 수 있는데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져 봤던 가장 오픈돼 있는 자리는 어학원을 다닐 때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함께 한 반 모임이었다. 선생님 두 분은 한국 사람이고, 남어진 우리는 일본, 대만 지역 그리고 중국 대륙에서 온 유학생이다. 열 명이 고깃집에서 철판에 둘러 앉아 연애관에서 아시아의 발전까지 네 시간 동안 어찌나 적극적인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특히 동아시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 일본의 교육 문제, 중국 대륙과 대만 지역의 분열, 한국의 정권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강조하고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 · 중 · 일 간의 전략적인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일본 친구들은 전에 몰랐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부끄러운 마음을 사과와 함께 전달했다. 실은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두가 평화롭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만 품고 있었지, 동아시아란 개념이 없었고 한 · 중 · 일을 하나로 묶어서 세계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평화로운 자리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동아시아의 공동 발전을 위해 힘을 내 봐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우리는 더불어 잘 살 수 있다, 서로 조금만 노력한다면 서로 조금만 더 선의를 가져 준다면, 서로 조금만 더 배려를 해 준다면.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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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李子龍

    2013.10.22 02:58 신고


    제가 언제 이랑글을 쓸 수 있을 거에요...

    • 타일러 라쉬

      2013.10.25 17:49 신고


      당연하죠!! 활동하고 싶으면 나중에 서울리즘으로 오세요~^^

    • seoulism

      2013.10.25 17:51 신고


      그래요! 당연히 이런 글을 쓰실 수 있죠! 서울리즘 활동하고 싶으시면 seoulism13@naver.com으로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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