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말? 광동어?



제키찬,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유덕화 등등 홍콩 영화가 흥행했었던 80년대에 살던 한국 사람들이라면 넟설어하지 않는 홍콩 영화배우들이다. 당시 영화 속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말은 홍콩말이라고 대중들에게 알려졌는데 홍콩말이라고 해서 홍콩에서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홍콩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은 홍콩말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실까요?




 

우선 중국 지도를 살펴보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북경은 중국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에는 광동성이라는 한국의 도와 비슷한 개념인 성이 하나 있다. 1997년에 반환된 홍콩과 1999년에 반환된 마카오는 위의 그림에서 표시되듯이 광동성에 위치해 있는 연해도시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국어는 중국의 공식적인 표준어, 즉 북경어를 토대로 만들어진 보통화이며, 홍콩말, 정확히 말하면 광동어는 중국의 광동성, 홍콩, 그리고 마카오에서 또는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교에게 사용되는 말이다. 특히 홍콩과 마카오의 경우에는 보통화 대신 광동어가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학교에서는 영어 학교가 아닌 경우에 광공어로 교육 과정을 진행한다.

 

물론 언어나 방언이라는 개념어 자체가 불확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단지 중국 국내에서의 보급률을 따져보면 광동어는 지역방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동어가 보통화에서 파생된 말이 아니라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현재 홍콩과 마카오에서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점, 외국에서 정착해서 사는 화교에게 많이 사용된다는 점, 또한 광동어를 보통화와 언어학적으로 비교할 때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에 있어서 광동어는 일반 지역방언과 달리 지역방언이라는 개념을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광동어와 보통화의 언어학적 차이는 크게 발음, 어휘 그리고 문법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발음에 있어서 광동어는 자기만의 완전한 발음 체계를 가지고 있다. 보통화만 구사하는 사람들이 광동어를 아예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보통화와 차이가 많이 난다. 예를 들어감사합니다’는 보통화로는씨에씨에(谢谢)’인데, 광동어로는음꼬어이(唔该)’라고 발음된다. ‘너무 예뻐요는 보통화로는 헌 피아오리앙이고 광동어로는 호우랭이다.

 

 

보통화

광동어

감사합니다

씨에씨에

谢谢

唔该

음꼬어이

너무 예뻐요

헌 피아오리앙

很漂亮

好靓

호우랭

 

위의 표를 보면 알겠지만 똑같이 감사합니다를 표현하는데 광동어와 보통화에서 쓰는 한자는 전혀 다르다. 그러면 광동어와 보통화는 사용하는 한자가 달라서 발음이 다른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 밑의 예시를 보면 안녕하세요안경의 경우는 한자가 같더라도 읽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또한 밥을 먹는다의 경우에는 똑같이 밥 반() 자이고 한글로 발음 표시를 할 때 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제로 들으면 아예 다르게 들릴 것이다. 그것은 성조 때문이다. 보통화의 성조는 4개 인 데 비해 광동어의 성조는 9개까지 있다.

 

 

보통화

광동어

안녕하세요

니하오

你好

레이호우

안경

옌찡

眼镜

안갱

밥을 먹는다

츨퐌

섹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앞서 말했듯이 광동어는 중국의 첫왕조에서 비롯된 것이라 고대 중국어의 모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받침이다. 예를 들면 광동성, 홍콩, 마카오를 비롯해 중국에 딤섬이라는 중화 요리가 있는데 그것은 보통화로는 디엔신이라고, 광동어로는 딤섬이라고 한다. 그리고 밑의 숫자를 읽는 법을 보면 광동어에는 보통화보다 받침이 더 많이 사용되며 보통화에 없는 ㅁ, , , ㄱ 등의 받침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화

광동어

1

2

3

4

쎄이

5

리우

6

7

8

지우

9

까우

10

 

여기까지 광동어와 보통화의 차이가 발음으로만 봐도 외국어 수준이라는 것을 모두가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휘와 문법 상의 차이를 다루려면 중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는 한자를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한 몇 가지 특징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먼저 광동어가 고어식 중국어가 많이 남아 있다는 특징은 어휘에서도 반영되는데, 같은 것을 표현하더라도 보통화는 두 글자로(쌍음절) 광동어는 한 글자로(단음절)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꼬리는 보통화로는 尾巴이고 광동어로는 尾巴의 앞 글자 로만 표현된다.

 

 

보통화

광동어

꼬리

尾巴

耳朵

 

또한 광동어가 주로 사용되는 광동성은 연해지역이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 더 개방적이며 외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 광동어에는 보통화에 없는 외래어가 많이 사용된다. 한편 문법 상의 차이는 어순에서 가장 많이 난다. 예를 들면 내가 먼저 간다를 표현할 때 보통화의 어순은 한국어와 같은 데에 반해 광동어의 어순은 내가 간다 먼저이다. ‘내가 너보다 크다는 보통화로는 내가 보다 너 크다이고, 광동어로는 내가 크다 보다 너이다.

 

 

보통화

광동어

내가 먼저 간다

내가 먼저 간다

내가 간다 먼저

내가 너보다 크다

내가 보다 너 크다

내가 크다 보다 너

 

뒤죽박죽이고 머리 아프지요? 지금 설명하면서 나도 내가 보통화와 광동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진 것 같다. 한자를 사용하는 것말고는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모국어로 삼을 수가 있지...? 일단 그것이 주제와 상관 없는 언어학적 문제라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그러한 의문이 생길 만큼 광동어가 보통화와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은 잘 전달됐으면 한다.

 

그렇다면 광동어를 하는 사람과 보통화를 하는 사람은 서로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능한 것인가? 광동어를 하는 사람이 보통화를 할 줄 알거나 보통화를 하는 사람이 광동어를 할 줄 아는 상황이 아니라면 적어도 회화에서는 그렇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표준어를 보급하기 위해 학교에서 표준어로 교육을 시켜야 함으로 과거에 교육을 못 받은 기성 세대 외에 대부분 광동 사람은 보통화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홍콩과 마카오의 경우는 그 전에 보통화가 필수 과목가 아니였기 때문에 홍콩 사람과 마카오 사람이 보통화를 할 줄 모른다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최근 몇 년 간 보통화 교육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그러한 이미지 또한 잘못된 선입견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 광동성으로 유학 가려는 한국 친구가 보통화로 의사소통이 안 될까 봐 걱정돼서 나에게 물어봤는데 나는 앞에서 한 이야기를 똑같이 해 주었다. 만약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전해 주세요. 오히려 광동성에 가면 북쪽과는 다른 중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요.

 

하나의 언어는 일종의 생활습관이며 일종의 문화이다. 2천 년 동안 수많은 변천을 거쳐 형성된 지금의 광동어는 고전시가나 역사 자료를 연구하는 데에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한편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만의 특유한 사고 방식과 문화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홍콩 영화처럼 광동어로만 제작된 작품들이 문화 산업 속에서 자리를 굳게 잡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한 가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광동어를 사랑하는 광동 사람으로서 그것이 늘 자랑스러웠다. 예전에 호주에서 유학한 적이 있으며 나름 많은 나라를 다녀봤는데 현지 사람에게 중국 사람이라고 하면 항상 받는 질문이 두 가지가 있었다.

 

“Whereabouts China are you from?”(중국 어디서 왔어요?)

“Guangzhou.”(광저우에서 왔어요.)

“Oh! So you can speak Cantonese?”

(그렇시군요! 그러면 광동어를 할 줄 아시겠네요?)

“Yes!”(!)

 

나는 그 사람들이 광동어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한국은 지리 상 중국의 북쪽과 더 가까워서 그런지 광동이나 광동어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계신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정통 광동요리나 딤섬도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다. 한국에 있는 동안 그것들은 늘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광동어 그리고 광동이라는 지역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광동어나 광동성 혹은 홍콩, 마카오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점을 댓글로 달아주시면 정성껏 답변드리겠습니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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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야기


이번 주에 주어진 주제는 사랑이다. 나는 지금 친구와 술을 먹고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술기가 조금 올라오는 이 상태에서 사랑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딱 좋은 것 같다. 그러니 오늘은 사랑에 대해 한번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자.





친구가 말하였다.

"사람은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 너무 힘들지만 이해해 주고 참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사랑한다면."


철학에서는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인간에게 최고선은 무엇인가?" 인류 사회에는 선과 악이 있다. 인간이 선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자연적인 법칙이라면 최고선, 즉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철학자들은 흔히 덕이나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덕스러운 삶 또는 행복한 삶은 어떠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을 던져 보자. 나는 행복한가? 나는 언제 행복이라는 감정이 느껴지는가?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며, 행복한 삶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자.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정의를 내린다. 사랑이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순히 상대방에게 잘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을 보고 달려 가서 대신 들어 주거나, 친구가 아프다고 해서 "괜찮아?", "밥 챙겨 먹으라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문자를 잔뜩 보내면서 걱정하거나, 여자친구가 야밤에 라볶이를 먹고 싶다고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에서 출발해 라볶이를 들고 집 앞에서 나타나 주거나, 집에서 키우는 식물에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고 이야기도 해 주는 등, 우리는 보상을 바라면서 그리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용돈을 받으려고 짐을 들어 주거나 노트를 빌리려고 걱정하는 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처럼 다른 목적성이 섞여 있는 행위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일방적이다. 상대방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사랑은 상호적인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흔히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무조건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사랑이 지나쳐 과잉보호하는 것이 자식에게 독이 된다는 지적을 받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인간은 사랑할 줄 아는 존재이다. 실재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도 상대방에게 잘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에 인간은 사랑할 줄 안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을 할 때 우리는 마음의 뿌듯함과 기쁨을 가지게 된다. 인간이 그러한 정신적 행위를 통해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완전성을 느끼기 때문에 사랑은 자족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여기서 가질 수 있는 질문 하나가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그 행위 자체가 자족적인 것이라면 인간은 왜 사랑 때문에 불행해지거나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잘 생각을 해 보자.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을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연인들의 이야기로 예를 들자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문자를 보고 바로 답해 주지 않거나 보자고 하면 회식이라고 하거나, 기념일을 깜박하는 등 여자들이 하도 자주 화내서 남자들을 미치게 하는데, 실은 여자들이 화나는 이유는 언제나 하나이다. 세상에는 여성보다 더 불안한 동물이 없을 것이다. 흔히 남자친구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여자친구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묻는데, 남자가 이야기를 하면 여자는 "그게 아니잖아"라고 화를 절대로 풀지 않는다. "아 미쳐버리겠다", 여자친구가 화나는 이유를 늘 알 수 없는 남자들은 생각한다. 여자들은 만약에 상대방에게 내가 사랑할 만큼의 사랑을 받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불안해진다. 실연은 왜 아픈가? 내가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사랑을 받지 못해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해서 잘해 주는 것이지만, 그 동시에 우리는 그리 행동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수반될 것이다. 인간은 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 속에는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신생아를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안아주는 것에 안심되는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을 사랑에 대한 욕망 때문이며 생득적인 것이다.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너가 어떻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또한 너가 어떻든 나는 너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사랑이 맹목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기적인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맹목적인 사랑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또 다른 본성, 이성에 의한 것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해도 만약에 그것이 너에게 부담이 된다면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겠다. 내가 너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도 너가 지금 힘든 상황이라면 나는 참겠다. 결국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도 지금 힘든 상황이라면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겠다, 친구가 한 말처럼.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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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7 11:21 신고


    짱입니당

  2. 2013.11.27 22:11 신고


    멋져요. 사랑은 일방적이다. 공감되는 말입니다

내가 살던 곳에는 가을이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가을은 늘 청록색, 황금색, 빨간색의 화려한 단풍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우리 고향에는 단풍이 없다. 길가의 나무들은 사계절에 따른 변화 없이, 잎 하나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은 초록색 모습으로 서 있다. 해마다 달라지는 것은 나무의 나이와 그의 높이일 뿐이다. 교과서에서 단풍으로 가을의 모습을 익힌 나에게 우리 고향에는 가을이 없다





한국 와서는 가을이 들 때마다 아름다운 단풍 경치를 구경하러 갔었다. 올해도 조금 늦었으나 오랜만에 가진 여유로 카메라를 들고 단풍을 찍으러 떠났다. 그리고 떠나가 전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우리의 대화 속에 이러한 내용이 나왔다.


"나는 그 사람들이 좋아. 그 사람들은 좀 특이해."


"너는 특이한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갑자기 머리에 뭔가를 맞은 느낌이 들고 전에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인데 일반 한국 사람하고 달라."라고 나는 말했다. "그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남의 지적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속한 문화권을 객관적으로 비판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그랬구나, 내가 그 친구들이 좋은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머릿속에서 한번 정리를 해 봤다.


가끔 한국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한국 문화가 우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자문화중심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성찰이나 비판 없이 이를 당연시하는 태도이다. 물론 나도 중국의 문화가 매력적이라고 여기듯이 자기 나라의 문화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좋고 안 좋은 면이 있는 법이니 비판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학기 초에 교수님은 우리에게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를 읽고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 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나 빼고는 듣는 사람이 모두 한국 사람인 강의이며,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다음 강의 때 교수님이 들어와서 약간 쓴 웃음을 지으면서 농담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 학생 중의 누가 나를 신고했다며? 신고하지마, 나 힘들어. 한번 갔다오면 얼마나 힘든데."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를 몰랐다가 저번 주 강의에서 다시 자본주의의 내용이 나와서 교수님은 물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묻자. 자본주의를 비판하면 안 돼?"


물론 이것은 예를 들은 것뿐, 내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중에 어느 쪽은 응원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그 당시 내가 기뻤던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그리 현명한 스승이 있다는 것이다. 교수님의 말대로 우리 사회가 어떤 정치체제로 운영되든 우리는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문제점을 예상하고 그에 해당한 대처를 세움으로써 우리의 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했는데 친구가 한 말이 이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좀 그래. 비판을 잘 못 받아." 외국인인 우리가 한 말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한 말이었다. 지적을 받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해 주지 않다는 면에서 나는 "특이한" 내 친구들이 좋다. 그들은 한국에 관한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개관적으로 비판할 줄 알고 또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긴 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가을을 찾으러 떠났다.


올해는 한국에서 보낸 3년째 가을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동경하던 가을을 그대로 그려 주는 한국이 좋다. 또한 3년째의 가을에 나를 특이한 내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것에 너무나 고맙다. 가을의 끝은 다가오고 있으며 겨울은 멀지 않았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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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라는 친구가 있다. 누가 봐도 일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일본 사람처럼 생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언니이다. 경민이라는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많이 도와주고 지금은 고시를 준비하느라 바빠 안 본 지 두 달쯤 된 오빠이다. 원경이라는 친구가 있다. 공모전에서 알게 된 중어중문학과를 전공하고 중국어를 아주 열정적으로 배우는 언니이다.


세 사람 중에 내가 한국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누군지 한번 찍어 보자.

가끔 한국 사람에게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을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에게 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인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라는 점에서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반면에 한국 사람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 사람이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사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일반화시키면 지나치게 절대적인데 대부분 한국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은 한국 사람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요인보다 객관적인 요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여기는 한국이고 우리가 만나는 한국 사람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국에서 자라왔다. 어릴 때부터 사귀던 친구가 있고 활동하던 지역이 정해져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하나의 외부 요인이며 언젠가 한국을 떠나기에 하나의 짧은 인연이다. 타국에 와 있는 우리가 그들을 의지할 수 있으나 그들이 우리를 의지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객관적인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 사람을 만날 때 상대적인 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대화를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그들도 우리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으면 하는 것이 그저 바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움을 겪으면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반면 그들은 예전부터 사귀던 친구에게 의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한국인인 상대가 우리에게 마음을 털어놓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달라진다. 그 속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


내가 이해하는 가장 친한 친구는 서로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는 친구이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남들과 나누지 못하는 슬픔을 나누며,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자기 나라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그런 친구인데 한국에서는 어디 쉬운가. 그래서 나는 민지 언니를 만난 것이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행운이라고 여긴다. 만난 지 3개월쯤 된 민지 언니와 약속을 잡기만 하면 밤의 열차가 끊길 때까지 할 말이 해도 해도 남는다. 서로 걱정을 해 주고 남들과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돼 준다. 만약에 내가 일방적으로 언니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면 서로 친한 친구라고 하지 못했을 터다. 물론 이와 같은 만남에서는 상대적으로 행동하는 것 외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내가 상대방의 모국어를 어느 정도 잘해야 하거나 상대방이 내 모국어를 어느 정도 자해야 한다. 아니면 만나기 쉽지가 않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해야 한다. 필수 전제는 그 두 가지 중의 하나여야 한다.


한편 오로지 언어 학습을 목적으로 삼아 우리를 만나 주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원경이란 중어중문하고가를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지 나와 중국어로 대화하고자 하는 사람을 친구로 만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아, 이 사람은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를 만나 주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상대방이 나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목적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물러나게 된다. 내가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중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언어 학습을 목적으로 시작된 만남보다 나는 그저 상대방이 나를 먼저 친구로 삼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일 뿐이다. 원경 언니처럼. 원경 언니는 중국인 유학생 세 명과 한국인 학생 한 명이 한 팀으로 한 '합계 DIY 서울여행 UCC 공모전'에서 만나 같은 팀으로 활동하게 된 언니이다. 같이 활동하는 짧은 시간에 언니는 중국어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면서도 우리를 진심으로 친구로 대해 주었다. 우리 또한 착한 언니를 친구로 삼았고 중국어에 대해 물어보면 아주 적극적으로 답해 주었다. 언니와는 공모전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연락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나는 아직까지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 중에 언니에게만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외국인에게 한국인 친구란?'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국인에게 한국인 친구도 그저 친구라는 것이다. 사람의 의식 구조 속에는 나라는 개념이 하도 굳게 박혀 있어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국적에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국적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속한 문화권을 말해 주는 것이라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은 국적을 갖기 전에 그저 사람일 뿐이다. 친구라는 것에 있어서는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이 국적을 앞서간다. 그것을 이해하고 외국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만이 그 외국인 친구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는 것이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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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ntact Me: 운영자메일주소




  1. 비너스

    2013.11.15 09:18 신고


    친구사이에는 국적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같아요~ㅎㅎ

  2. 와코루

    2013.11.15 10:56 신고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ㅎㅎ 즐거운하루되세요^^

수능을 세 번 치고 고려대로 들어온 동기가 있다. 수능을 세 번 친 이유를 물어보면 "그때 추구하는 게 있었는데 계속 실패했으니까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 싶어서 고대로 왔어"라고 말했다. 그말은 듣고 "아, 모두가 들어오려고 난리치는 명문대인 고대는 이 친구에게 최선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 친구가 바라는 최선,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말투를 들어보면 서울대는 아닌 것 같다. 고려대보다 위인 학교는 서울대일 뿐인데 고대로 들어와 있는 그에게 최선이 서울대가 아니라면, 그가 꾸미고 싶었던 미래는 결코 학교 랭킹 또는 수능 성적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에게는 인생의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꼭 명문대를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수능은 아니지만, 호주에서 대학입학시험을 치고 좋은 성적을 버린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최우수상까지 타고 97.5/100의 대학입학 성적으로 호주의 어느 대학이든 입학할 수 있었던 그는 명문대에서 온 입학제의들에 거절하고 호주를 떠났다.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하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보증은 없으나, 그리 될 수도 있다는 기회에 거절한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났어야 한 그는 대체 다른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한국어를 아예 모르는 그는 한국으로 와 어학과정을 걸쳐 지금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에? 철학과? 왜 남들이 탐나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해서 철학을 배우러 한국으로 왔어야 하는 것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그에게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 본 대학입학시험은 그저 호주 유학생활을 잘 마무리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본 시험일 뿐이다.


대학입학시험을 안 본 친구가 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대신 자동차전문학교를 다니고 지금은 잘 나가는 타일 회사의 영업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학력지상주의인 사회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남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며, 더 많은 차가운 시선을 느낀 그가 지금 이 자리까지 걸어온 길은 결코 평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노력하고 있는 그에게 대학입학시험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녀서 대학입학시험을 보고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쳐도 고등학교 3년과 대학 4년 과정에 드는 돈과 시간은 그저 감당하지 못할 부담일 뿐이며,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해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대학입학시험은 그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수능,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줄임말. 이와 같은 평가 시스템은 미국의 SAT를 비롯해 세습제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개인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다. 시험을 보고 대학에 합격한 자들은 능력자이며, 남들보다 좋은 직장을 다닐 만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개인이 갖고 있는 재주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는 능력주의사회이다. 한국처럼.


나는 한국인 학생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오로지 수능을 잘 보기 위해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학교, 학원, 집 세 군데를 오가면서 공부에만 집중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원을 다닌 적이 한번도 없었고, 한번은 정말 수학을 너무 못한다는 생각에 과외 선생님을 구해 왔는데 역시 나에게 안 맞는 것 같아서 수업을 한 번만 듣고 접게 됐다. 공부하느라 하루하루 6시간 밖에 안 자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내일이면 수능이다. 진심으로 모두가 잘 됐으면 좋겠다. 단지,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이 있다면 수능이 시작도 끝도 아니라는 것이다. 잘 쳤다고 해서 인생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잘 못 쳤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생길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리 하고자 한다면.


수험생 여러분, 서울리즘과 함께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모두들 파이팅하고 시험을 무사히 잘 마치기를 바라겠습니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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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꿈을 잃었을까요?

학교 축제 때 틀어 준 영상이 생각난다. 활기 넘친 대학생들이 몇 천 명 모여 있는 운동장. 날이 캄캄해서 그런지, 스크린이 더 잘 보이고 영상의 소리가 똑똑히 잘 들린다. '꿈이 뭐예요?' 학교를 견학하러 온 고등학생들에게 물었다. 의사, 대통령, 선생님... 그들의 목소리에는 명확함과 순수함, 그리고 열정이 들렸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넌 꿈이 있어?" (여학생 한 명이 웃으면서 옆의 친구에게 물었다)

... (침묵)

"언제 잃었는지 기억 안 나요."

"없어요."

대학생인 그들의 답 속에는 안타깝게도 무력함과 막연함 밖에 들릴 수 없었다.

영상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때 명랑하고 꿈이 있는 우리는 언제부턴가 꿈을 잃었다. 영상이 계속 이어져 가면서 뜨거운 축제 분위기는 잠깐 가라앉고 모두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시간을 가졌다. 나는 꿈을 잃었을까?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학업 또는 취업에 대한 압박 때문에 꿈이 없다는 주장을 많이 한다. 실은 한국뿐만 아니라 입시위주적인 교육과 취업난이 심각한 문제로 돼 가고 있는 한중일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비슷한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진정으로 젊은이들에게 꿈을 키울 수 없고 희망을 줄 수 없는 땅인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어학연수를 가려고 하는 사람들, 평생 한국에 살아오면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적 압박에 해방되려고 하는 사람들,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적응이 잘 안 되는 사람들.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들이 그리 하고자 하는 이유는 한국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큰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한국은 그토록 슬픈 땅인가?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이 있다고 하면 한국에 남고 싶어하는 외국인도 있다. 3년 간 여기서 사귀고 헤어진 외국인 친구가 많았는데 이미 떠난 그들에게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3개월 만에 또 다시 학업의 목적으로 온 친구가 몇 명이 있었고, 그것이 안 되는 친구들은 적어도 거의 한 번씩 여행을 다녀갔고, 여행을 다닐 여유조차 없는 친구들은 한국이 그립다거나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토록 한 나라에 남고 싶어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희망을 키워 주고 그 땅에서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평범한 나로 돌아갈 것 같다", "한국에서 학교를 창립하고 교장 선생님이 되고 싶다", "기획사로 들어가서 노래하고 싶다",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내가 발견된다"... 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한국에 남고 싶어하는 이유는 같다. 한국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땅이기 때문이다.

어떤 곳이든 남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 또한 분명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 남아 꿈을 꾸는 외국인들은 한국이 꿈을 키워 줄 수 있는 땅이라고 말해 준다. 그 와중에 꿈을 아직 안 잃은 한국인 대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음악에 열광하는 친구는 악보를 차리고, 법학을 전공하는 선배는 기자가 되고, 동양에 관심이 많은 후배는 동아시아에 대해 연구하는 교수가 되고, 자기가 모은 돈으로 뮤지컨 관람을 취미로 키우는 동기는 뮤지컬을 기획하고... 그리고 "하고 싶은 거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동생 또는 "내가 말하는데 나는 정말 나중에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사람이 될 거다"라고 한 오빠. 멋진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이다. 또한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멋져 보이는 그들이다. 한국의 가능성은 한국 땅에서 꿈을 꾸는 그들에게 있으며 한국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다.

그러한 한국에서 당신의 꿈은 뭐예요?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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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 엄숙하고 웅장한 느낌이 나며 위대한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줄 알았던 이 단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와는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자로서 일반인들에게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키는 사명감이 느껴지며, 서울리즘의 집필진으로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 주는 사명감이 느껴지고, 아무런 단체에 속하지 않고 그저 현대 사회의 일원인 나로서는 동아시아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에 한 몫을 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느껴지고 있다. 더불어 살자는 사회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하나로 되고자 하는 의식이 결핍돼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 온 이후부터 많은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과 어울리며 나는 한 · 중 · 일 간의 갈등과 마찰에 있어서 그러한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진다.



이번주에 서울리즘을 홍보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길거리로 나가 설문조사를 실행했다. 사람들에게 조사한 것 중에 '외국인이 본 ○○이/가 궁금하다'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의외롭지 않게도 위안부와 독도라는 답이 나왔다. 이는 어떤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에게 다루기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일본 친구와 제주도에 갔다 왔는데 거기서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는 우리 일행 중에 일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비난을 했다. 아저씨는 흥분한 상태에 빠지고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듣기만 했다. 그런 상황은 한국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분명히 뭔가 잘못되고 있다. 한발 물러서서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지금 이 그림은 분명히 우리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하나가 되고 조화로운 사회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상호적인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상호적인 소통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우리는 한 자리에서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잘못된 자리에서는 잘못된 견해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교수님이 위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다룰 때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그것을 듣고 학생들이 밑에서 비웃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동아시아의 향후 교육 방향을 주제로 하는 토론 콘테스트인데 중국 대표팀 없이 한국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이 일방적으로 검색 자료를 가지고 중국의 교육을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잘못을 알아야 바로잡을 수 있는데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져 봤던 가장 오픈돼 있는 자리는 어학원을 다닐 때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함께 한 반 모임이었다. 선생님 두 분은 한국 사람이고, 남어진 우리는 일본, 대만 지역 그리고 중국 대륙에서 온 유학생이다. 열 명이 고깃집에서 철판에 둘러 앉아 연애관에서 아시아의 발전까지 네 시간 동안 어찌나 적극적인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특히 동아시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 일본의 교육 문제, 중국 대륙과 대만 지역의 분열, 한국의 정권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강조하고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 · 중 · 일 간의 전략적인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일본 친구들은 전에 몰랐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부끄러운 마음을 사과와 함께 전달했다. 실은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두가 평화롭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만 품고 있었지, 동아시아란 개념이 없었고 한 · 중 · 일을 하나로 묶어서 세계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평화로운 자리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동아시아의 공동 발전을 위해 힘을 내 봐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우리는 더불어 잘 살 수 있다, 서로 조금만 노력한다면 서로 조금만 더 선의를 가져 준다면, 서로 조금만 더 배려를 해 준다면.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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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李子龍

    2013.10.22 02:58 신고


    제가 언제 이랑글을 쓸 수 있을 거에요...

    • 타일러 라쉬

      2013.10.25 17:49 신고


      당연하죠!! 활동하고 싶으면 나중에 서울리즘으로 오세요~^^

    • seoulism

      2013.10.25 17:51 신고


      그래요! 당연히 이런 글을 쓰실 수 있죠! 서울리즘 활동하고 싶으시면 seoulism13@naver.com으로 연락 주세요!!!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집, 우리 부모님 등등, 외국인이 처음으로 한국, 또는 한국어를 접할 때 낯설어하는 부분이며 어색한 말들이다. '우리'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한국은 그만큼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다. 개인보다 언제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옳고 그름을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결코 한국 생활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 사람과 집단 생활을 할 때 웬만하면 피할 수 없는 서열의식과 술자리 문화는 많은 외국인이 어려워하는 부분 말이다. 검도부라는 운동 동아리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선후배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며 술을 물먹듯이 마시는 곳이다.



검도부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검도부에서 지켜야 할 3가지 예(禮)였다. 국기에 대한 예, 스승에 대한 예, 그리고 선배에 대한 예. 그것을 지키면서 나는 즐거운 집단 생활의 비결이 인사를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사는 무조건 바르고 신속하며 크게 하는 법이다. 가끔 쑥스러워 인사가 늦었는데 선배들에게 혼나곤 했다. 그리고 술자리에는 핑계가 없는 법인데, 고대 검도부에서는 "전 몸이 안 좋아서 오늘 좀 빠질게요", "소주에 약해서 맥주만 먹을게요" 등등 모두가 통하지 않는 것들이다. 먹이면 무조건 먹어야 하며 원샷하자고 하면 무조건 원샷이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절대로 봐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늘 자랑스러우며 만족스러웠다.

고대 검도부는 아주 글로벌한 운동 동아리다. 앞서 말했듯이 글로벌하다는 것은 서열의식과 술자리 문화에 있어서 외국인을 잘 배려해 준다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은 그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검도부에서는 나 말고도 일본, 영국, 싱가포르, 미국, 브라질, 독일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친구들이 있다. 외국인이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자주 실수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으로 우리를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모르면 가르쳐 주고 실수하면 바로잡아 주는 것이 고대 검도부가 외국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면 모르는 척하거나 아예 입을 열지도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를 못하는 우리 훈련부장은 부끄러움을 잘 타더라도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검도를 가르칠 때는 아는 단어를 사용해서 해석하려고 늘 최선을 다해 왔다. 그처럼 고대 검도부의 한국인인 부원들은 다른 한국인들처럼 '외국인은 말도 통하지 않고 자주 챙겨 줘야 하니까 귀찮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으며 우리를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검도부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는 것은 늘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며 글로벌한 마인드를 잘 갖추고 있는 선배와 동기들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한 집단이 외국인을 잘 받아 주는지, 아닌지에 있어서는 그 집단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집단뿐만 아니라 외국인 본인에게도 한 몫이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외국인들과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일부 외국인들은 자기를 제삼자의 입장에 두고 "아니, 한국 사람은..."라는 식으로 한국 사회나 한국 문화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향은 늘 주고받는 것인데 한 집단에서 더불어 살려면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봐야 하며, 적응하지 못해 결국 비판만 하는 식이 마땅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집단이 우리를 반겨 주지 않는 이유가 그 집단의 사람들의 배외의식에 있을 수도 있지만, 가끔은 적응하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우리에게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술자리에서 술을 잘 먹이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때는 분위기를 잘 맞춰 가면서도 술을 적당히 피하는 교묘한 방법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그 방법보다도 강조하고 싶은 것이 그렇게 맞춰 가는 것까지 해서라도 이 집단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국인인 우리 사이에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면 역시 술자리 밖에 없다." 술을 즐겨 먹는 한국 사회에서 한국 사람과 잘 지내려면 한국의 정서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며, 먹기 싫기 때문에 무조건 거절하는 것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그 집단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그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하나가 되려는 간절하며 적극적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어려움 앞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한국 사회를 진정한 포용적인 다문화 사회를 키우려면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배외의식을 가지면 안 되며, 어떤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선입견으로만 일반화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 즉,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져야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에게는 자기 나라의 문화의 시각으로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판단하거나 지적하는 것을 반드시 삼가야 하며, 한 집단에 적응하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 줘야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야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더불어 살며 한국의 집단주의 의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작은 국제적인 사회인 고대 검도부는 뛰어난 단체이다. 여름합숙, 연무대회, 호구식, 선후배친선시합 등 같이 호흡을 맞추며 땀을 흘리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 온 우리는 그저 하나일 뿐이다. 지금이야 내가 개인 사정으로 검도부를 나와 있지만 검도부를 나갈 때 선배가 나보고 한 말이 있다. "언젠가 한때 네가 몸담았던 곳이니 그리우면 언제라도 찾아오거라. 검도부는 그런 곳이니까..."


한때 내가 몸을 담았던 곳이라.

그렇다. 우리는 하나고 나와 검도부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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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성권

    2013.10.12 01:19 신고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고대검도부원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힘들고 안좋았던 일들도 많았지만 젊은 시절 한때 숨이 멎을듯이 진땀을 흘리며 죽도를 부딪던 추억속에 모든것이 희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추억이 긴 세월 살아오며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로 나를 일으켰습니다.. 고대검도부는 나가고 들어옴을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자율적인 집단입니다. 그래서 졸업한 후 수십년 연락을 끊고 지내온 OB들도 고향을 찾는 연어처럼 언제든지 돌아오면 누군가 도장을 지키던 사람들이 처음 우리가 만났던 그때처럼 반가이 맞아주는 그런 고향집 같은 집단을 추구합니다.

지난 학기에 한 강의에서 나는 우리 팀멤버와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 학기 내내 팀플을 함께 해 온 우리는 학기 종강날에 종강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신나게 간 그 자리에서 내가 울 줄은...


내가 우리 팀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면 매주 금요일에만 있는 그 강의를 월요일부터 금요일이 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남자친구도 아닌데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가 오면 곧바로 확인을 하고, 종강날에 열리는 종강파티가 한두 가지 아닌데도 왔다갔다해서까지 반드시 참석했어야 한 나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날도 정말 신나게 갔었던 자리 말이다.


도착했을 때 이미 모두가 술이 조금씩 들어간 상태라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다 빨개졌고 딱 분위기가 좋은 때였다. 수맥을 만들 때 소주와 맥주를 어떤 비례로 하는 것이 가장 맛있을지, 시킨 과일 셀러드에는 키위가 왜 그렇게 없는지, 이번 학기에 서로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좋고 고마운지 담소를 나누다가 술기운이 오른 그녀는 '난 고백할 게 있어'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엄청난 것을 고백할 기세였다. 오빠들은 그가 술김에 사고를 칠까 봐 말렸다가도 계속 '연문아, 연문아 들어 줘. 오빠들도 들어 줘.'라고 하길래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로 했다.


나에 관한 이야기라니.

나한테 하는 고백이라니.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예전에 팀플을 할 때 조장을 한 적이 한번 있었다. 멤버 중에 일을 안 하는 중국 사람이 한 명이 있었는데 결국 자기가 다 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 화가 많이 났었기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고 그녀는 말하는데 그래서 처음에 우리 팀에 중국 사람이 있다는 것이 못마땅하며 그때 그 중국 사람을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고 한다. 여기까지 듣고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우리가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선배가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나서서 만들 줄 알지만 잘은 못 만든다고 했다. 그때 말을 안 한 그녀는 나를 보고 '뭐야 쟤, 나도 만들 줄 알거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부터가 충격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 몰랐고 그의 고백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우리가 밤새 동영상을 제작했던 날에 짜증난 그녀를 보고 나는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보면 그때 눈치를 못 챈 나라서 그녀도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다.


밤새 동영상을 만들었던 날에 나는 많이 미안했다. 영상 작업을 할 때는 한 노트북으로만 하기 때문에 여러 명이 동시에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작업을 하는 데에 멤버들의 아이디어가 필요하여 모두가 모여 있는 것이다. 영상 작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멤버들의 아이디어를 집어넣어 영상을 금방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라서 작업이 느리며 맴버들을 함께 밤새게 한 것이다. 그것에 있어서 나는 계속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면 그는 밤새 동영상을 열심히 만든 나를 보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그 전에 만난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가 한 말대로는 나는 우리의 팀의 핵심이었고,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내 덕에 팀플을 잘 끝낸 것이라는데 옆에서 듣고 있는 선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해 주었다.


'나는 연문이 때문에 중국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어.'


그 말들을 들은 순간 나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참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한 학기 동안 계속 함께 활동해 온 친구인데 내가 그녀가 나 때문에 그렇게 고민을, 그 많은 생각들을 했는지를 전혀 몰랐다. 그리고 이제 다 끝나고 나서 내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있어서 얼마나 감격하는지를 모른다.


혼자서 유학 생활을 한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호주든 한국이든 사람들이 중국인 유학생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안다. 그리고 일부 중국인 학생이 유학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그러한 선입견을 충분히 가질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오로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뿐이다. 열심히 하는 나라면 사람들은 그녀처럼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전제는 사람들도 그녀처럼 자기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회의를 해 보는 것이다.


'연문아, 미안해.' 그녀는 내 눈을 보고 진지하게 사과를 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그녀는 이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꺼내서까지 잘못을 인정하고 나에게 사과했어야 한 그녀는 내 눈에 몹시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리 순순하고 지혜로운 그녀에게는 내가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고마워 친구야.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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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4 15:09


    비밀댓글입니다

  2. 너기

    2013.10.06 06:08 신고


    중국인 유학생 편견이 많이 안좋나요? 몰랐네요; 타향살이 힘내시길.. 그리고 제가본 중국인들은 좋은사람 많았어요.

  3. 예지추

    2013.10.08 17:20 신고


    감동적이 이야기네요~!! 두 분 우정 영원하시길...

'여기 혼자 밥 먹어도 되나요?'

어떤 한국인이 가게로 들어오며 주인에게 물었다.


돈만 있으면 혼자 밥 못 먹게 하는 식당도 있나 친구와 식사하고 있는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혼자 밥 먹는 것을 민망하게 하는 식당이 있긴 있다. 부대찌개 가게처럼.


한번에 친구와 부대찌개집으로 갔는데 한 중국인 여학생이 들어와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낯설어하며 두려워하는 눈치였으니 한국에 온 지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였다. 점원 언니가 와서 주문을 받아 주는데 그녀는 익숙하지 않으며 중국인 억양이 들어 있는 한국말로 '부대찌개 1 인분 주세요'라고 말하였다. 점원 언니는 당황해서 1 인분이냐고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것을 들은 주변 손님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여학생은 그때야 알았다. 부대찌개를 먹을 때 보통 친구와 함께 2인분 이상을 시켜 먹는 것 말이다. 이제서야 가게를 나가는 것이 민망하고 2인분을 시켜야 하나 주저하고 있는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다행이 점원 언니가 친절하게 주방에 말해 놓고 1인분의 부대찌개를 준비해 준 덕에 그녀는 무사히 식사하고 나갔다. 그녀가 혼자 부대찌개를 먹는 동안 얼마나 불안해하고 부끄러워했을까 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에 처음 와서 홀로 밥 먹을 때 이유도 모르고 주변 사람에게 이상한 시선을 받는 경험은 결코 그 여학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는 다른 식이나 똑같이 민망한 경험이 있었다.


얼마 전에 나는 저녁에 배를 대충 채우고 빨리 어디 좀 가야 해서 혼자 식당에 갔었는데 마침 아는 선배가 여자친구와 거기서 식사하고 있었다. 선배가 먼저 인사를 해 주기는 했으나 여자 친구와 서로 모르는 사이이기에 합석하기가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다른 자리에 앉아서 선배가 일어나기 전에 빨리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시킨 제육볶음을 열심히 먹었다. 그 당시 고개를 들지 않았으나 선배가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선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먼저 일어난 선배는 묘한 표정으로 나에게 '많이 먹어'라며 가게를 나갔다. 혼자 남아 있는 내가 선배 눈에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선배에게 나에게도 친구가 있다는 것을 얼마나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를 잘 안다.



그 여학생과는 다르게 나는 혼자서 2인분을 시켜야 하는 식당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혼자 밥 먹는 나를 보고 나에게 친구가 없다는 오해가 생기고 나는 '걔는 친구가 없나 보다'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혼자 밥을 먹으러 학생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라 거기라면 마음이 편히 밥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갔었는데 선배를 만난 순간에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외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웬만하면 혼자 밖에서 밥을 안 먹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이 굶어서도 밖에서 혼자 안 먹고 배달을 시킬 때도 2인분으로 시키는 이유는 눈치를 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는 얼마나 눈치를 많이 보이면 혼자 밥 먹는 데에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일까?


윗사람이 들어오면 앉아 있다가도 일어서 인사를 해야 한다. 노래방에서는 음치라도 적어도 한 곡을 해야 한다는 무언적 압박 때문에 마이크를 잡게 된다. 대학원에서는 자유토론을 할 때 자기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보다 교수님이 원하는 답에 맞춰서 발언해야 바람직하다. 학교 영어 수업에서는 미국인 발음을 조금이라도 흉내내는 것처럼 보이면 왕따를 당할 수 있어 한국식 영어 발음으로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어학원을 다닐 때 문화 수업에서 '눈치'라는 단어를 따로 가르쳐 주었을까? 한국 사회는 그만큼 눈치를 많이 보이는 사회이다. 가끔은 내가 그런 눈치를 봐야 할 필요가 있나 의심할 정도 말이다.


글쓴이: 반연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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