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황제처럼 먹고 저녁에 거지처럼 먹어라'라는 말은 음식을 중대시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 엉뚱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주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양이 적은 음식에도 열정이 많아요. 바쁜 하루의 마지막 밥인데 우리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먹을까요?


사테(Satay)


● 사테(Satay)와 크투팟(Ketupat)

한국 사람들이 고기에 반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고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밤에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대부분이 평소에 사테(Satay)라고 대답할 거예요. 사테가 닭고기나 양고기, 소고기를 대나무 꼬챙이로 구운 꼬치구이와 같은 요리입니다. 특별한 양념으로 고기를 구울 때 꿀도 칠해서 굽습니다. 또한 땅콩과 양파, 고추로 만든 소스에 찍어서 먹고 오이와 같이 먹어요. 밥이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분들이 계실 텐데요. 답은 사테의 파트너인 크투팟(Ketupat)입니다. 크투팟은 코코넛 잎으로 쌀을 싸서 찐 떡과 같은 음식입니다. 코코넛 잎이 있어서 크투팟을 찐 후의 향기가 밥에 흡수되어 가지고 밥이 아주 맛있게 나옵니다.


크투팟(Ketupat)


● 하루를 돌이켜 보면서

밤이 하루의 결말이니만큼 우리 하루 종일 무엇을 했는지 반성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저는 예전의 나를 다시 떠올려요. 자유. 그것이 예전의 제가 제일 원했던 것이에요. 매일 엄마의 잔소리와 아빠의 질책, 수업, 과외,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도망하려고 했어요. 항상 밖에 있는 세상이 더 흥미롭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을 알고 있어요. 밤에 달을 보고 자기의 인생을 반성하다가 다른 사람의 인생이 부러워지면서 한숨만 쉬게 돼요. 시간이 쏟살같이 흘러가고 지금은 제가 자기 인생을 아는 것은 조금 폭이 넓여진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믿고 있었던 것을 사실인지 아닌지 점점 모호해졌어요. 지금 19살인 저는 기대하고 기대하던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좀 다릅니다. 더 어렵고 피곤한 데에 반해 예상하지 못하는 경험이 더 많아요. 문화차이 때문에 재미있는 것과 웃기는 것, 창피한 것, 괴로운 것, 행복한 것 여러가지 있죠. 그런데 저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외로움하고 즐거움인 것 같아요. 외로움은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항상 보살펴 주는 가족들이 지금은 옆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즐거움은 매일 저와 같이 웃어 주는 친구들 덕분이에요. 그들은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자꾸 웃음에 밝은 표정으로 저를 지켜 줬어요. 지금 밤에 별로 장식한 하늘을 보면서 고향에 계시는 분들이 똑같은 둥근 달을 보고 있을까요? 오늘은 끝나지만 내일은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밤입니다.


글쓴이: 후이민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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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ntact Me: 운영자메일주소




  1. 서정원

    2013.08.19 19:45 신고


    문자보낸거 보고 Seoulism 홈페이지에 들어와봤어요^^ㅋ 글을 너무 잘 썼네요~!! 덕분에 말레이시아 음식문화에 대해서 잘 알게되었어요... 앞으로 계속 화이팅♥♥

    • seoulism

      2013.08.19 23:37 신고


      서정원 씨 안녕하세요?

      편집장을 맡고 있는, 미국에서 온 타일러입니다. Seoulism을 방문하고 후이민 씨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이민 씨가 말레이시아에 대해서 정말 재미있는 칼럼을 써 주셨어요!!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Seoulism에서 읽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 주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잘 지내세요? 

저는 저번에 일본과 한국의 축구 경기를 친구와 함께 보러 갔습니다. 

자국을 응원하는 관객의 열기가 경기장에 가늑 차 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아시아의 축구를 견인하는 두 나라의 국가대표가 다툰 경기는 한국이 맹공격을 가하면서도 이것을 견고히 수비한 일본이 종반에 골을 성공시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경기가 개최된 잠실종합운동장은 1988년에 개최된 서울올림픽에서는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실은 제 고향인 나고야는 서울올림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주는 올림픽에 관한 나고야와 한국의 인연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1981년 9월에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위원들이 투표한 결과, 서울시가 1988년 올림픽의 개최지로 뽑혔습니다. 그 때 서울시와 대결한 상대방이 나고야시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나고야는 일본의 네 번째 대도시였고 서울은 한국의 수도였지만 1981년 시점에서 비교해 보면 현재와 달리 나고야가 서울보다 발전된 도시였다고 추정됩니다. 게다가 민주주의국가인 선진국의 도시와 군사정권의 독재 하에서 성장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도시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대회운영능력이 높았는지는 분명히 전자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투표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압도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고향을 사랑하는 저에게는 조금만 억울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출된 뒤에 한국은 큰 혼란 없이 올림픽을 성공시키며 올림픽 이후에는 나라 전체가 크게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울은 나고야에 이겼을까요? 저는 유학 전부터 궁금하던 이 질문을 풀기 위해 올림픽공원에 갔다 왔습니다.



올림픽공원은 서울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원 안에 있는 서울올림픽기념관에서는 서울올림픽과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서울올림픽 초치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초치 과정에서는 서울은 나고야에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투표일까지는 나고야 우세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고야가 투표의 승리를 확신해서 해이해졌는데 비해 서울은 투표 직전까지 열심히 로비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 덕분에 서울은 역전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서울올림픽 유치 과정에 관한 책을 읽어 봤더니 역시 한국 사람의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 덕분에 승리했다고 합니다.



정신론만으로 서울이 개최지로 뽑힌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투표자의 마음을 흔든 것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의 정신력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고 존경할 만한 부분입니다. 지금은 도쿄가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입후보하고 있습니다. 도쿄는 나고야처럼 올림픽 유치를 실패하고 싶지 않다면 1988년에 서울이 보인 강인한 정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고 역사를 활용해야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오오이 히로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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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홍콩 사회에서 직장이나 가족관계 등에서 남녀 평등이 잘 실천되는 편이에요. 그런데 홍콩 원주민들의 성별 차별은 아직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입니다. 홍콩 원주민들은 한국인과 비슷할 정도로 유교적인 것을 매우 중시하는 편이에요. 대부분이 시골에서 살아요. 한 마을에서 같은 성이 있는 이웃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정에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이 있습니다. 가족끼리 종묘에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남자만 할 수 있는데다가 여자는 종묘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라고 해요. 제사가 끝난 후에 원주민들이 제물을 음복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품질이 좋은 고기는 남자만 먹을 수 있고 여자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제물을 준비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기회도 없어요. 따라서 여자들은 열등감을 느껴요.

또한 홍콩은 영국 식민지가 되었을 때 영국 정부가 땅에 대한 원주민의 기득권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 특별한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원주민들 중에서 남자만 기득권이 있었어요. 만약에 가족에서 딸만 있으면 땅을 하나도 몰려 받을 없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학력이나 능력에 거의 차이가 없으니만큼 그런 남존여비와 같은 사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땅의 분배에 대한 비합리적인 법을 먼저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녀평등 뿐만 아니라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홍콩 사람들 사이에 공평적으로 같은 권리를 부여하고 그의 상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홍콩 정부가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려영혼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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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g

    2013.10.06 06:36 신고


    중국에도 유교사상이 남아있는 부분에 대해서 궁금했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나는 5 딸 중 넷째로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 했기 때문에 예외없이 어린 나를 포함해서 우리 자매는 모두 아들 몫까지 감당해야 했다. 우리 집은 쌀 장사를 했다. 잘 팔려면 일찍 안 나가면 안 되어서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가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가곤 했다. 시장에 가면 장날이 끝날 때까지 엄마 옆에서 앉아 기다릴 뿐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손님에게 양이 많은 주문이 들어오면 멀리 있는데도 직접 가져다 드려야 했다. 엄마랑 아빠는 무거운 쌀자루를 수레에 실어 엄마는 앞자리에서, 나와 언니는 뒷자리에서 술레를 그렇게 밀고 가면서 쌀을 팔았던 기억들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다 하고 나서 엄마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쌀국수 한 그릇을 사 주면 나는 더 기쁠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녹두가 가공된 후 불량한 것을 고르는 일. 언니랑 같이 가서 했던 일인데 아직 어려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기만 했지, 잘 못한다면서 며칠 만에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잘렸다. 중학교 때 사탕을 포장하는 일도 해 봤다. 지금 모두 기계로 만들지만 옛날에 다 손으로 만들어졌으니까. 해가 뜨나 비가 오나, 여름에도 겨울에도 상관없이 자전거를 타고 공장으로 갔다. 1킬로 700동(đồng, 한국 돈으로 약 37원)이었다. 계속 하다 보니까 냄새가 날 정도로 두 번째 손톱이 거의 다 뜯겨질지라도 빠진 날은 하루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그렇게 살아 왔었다. 그런데도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은 것이었다. 어려움을 극복해서 고등학교 때 나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서 중학교 때 우리 반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내가 점점 인정을 받게 되었다.

대학교는 그동안 거두어 온 성과를 바탕으로 나는 항상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낮에 학교를 다니고 집에 돌아오면 선생님이 낸 숙제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스스로 찾은 과제도 열심히 해싿. 어떤 일이든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열심히 할수록 점수는 툭 떨어졌다. 그래서 장학금은커녕 나는 여전히 친구에게 인정을 못 받았던 것이다. 반대로 내가 공부에 신경을 잘 안 썼을 때는 왠지 나도 모르게 점수가 올랐지. 그 때부터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나는 다른 친구 못지않게 1등이 아니더라도 2등, 아니면 3등을 하고 싶은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에 열정을 기울여서 내 꿈이었더 장학금까지 받고 이제 한국에 와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게느냐면서 부러움을 표현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벗으며 꽃입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시를 보니까 나의 인생도 바람과 비를 맞으며 피어가는 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은 나에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그래도 그런 어려움 덕분에 내가 지금처럼 성숙해지고 강해진 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늘 나의 죄우명이다.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은 성공한 사람에게 쓸모없는 것이다. 인생에서 실패해야 앞으로 그 실패를 다시 한 번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성공할 수 있다. 꿈이 필요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련에 부딛쳐도 극복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쓴이: 원티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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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논한 것처럼 세상에서 낙관적과 비관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세계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꾸 글로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짐으로써 언제든지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해결책을 고안할 뿐만 아니라 실천도 합니다. 또한 적극적인 사람들은 시작하고 나서야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지금까지 우리가 큰 문제가 없고 아직 안전하게 이 지구에서 살고 있어요.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것처럼 낙관적인 사람이 20년 정도 지나면 자동차의 수가 늘어날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의견은 밝은 미래가 펼쳐지나 동시에 나쁜 결과가 생기기 때문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나섭니다. 그래서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사람들은 낙관적인 사람보다 자동차를 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깨닫는 사람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차로 다니는 대신 걸어 다니면 건강을 지키고 생각할 시간을 마련하니까 일석이조이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지금은 2020년이 된다면 적극적인 사람들만 차를 안 탈 것 같다면 적극적인 사람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점점 개선될 수가 있어요.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는 것이 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비관적인 사람처럼 미래의 환경 상태가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사람처럼 해결 방법을 생각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소를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사람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굉장히 싫어하고 해결 방법을 찾느라 사생활이 없을 정도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요. 왜냐하면 적극적인 사람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인간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으면서 깨끗한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수명이 길고 건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적극적인 사람들이 유비무환이라는 말의 한 훌륭한 보기가 됩니다. 그들은 미래가 좋을 거냐, 어두울 거냐와 같은 질문을 마음 속으로만 궁금해하지 않고 의식적인 것을 실천함으로써 모두에게 좋은 일을 합니다.


글쓴이: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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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5월달에 길을 걸었다가 여러 색깔로 친 등이 몇 줄로 길가에 달려서 사람의 눈길을 끌고 있었습니다. 제일 앞에서 기발을 발견했어요. 거기서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불탄일을 쇠기 위해 신자들이 소망을 축원문에 적어서 등에 매달아 놓고 소원 성취를 간절히 바라는 관습이 있다고 한국 친구가 말해 주었어요.


● 홍콩 청차우 섬의 유명한 오신날 축제

홍콩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신날에 특별한 축제가 있어요. 그리고 한국보다 홍콩에서 불탄일을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홍콩에 '청차우 빵 축제(Cheung Chau Bun Festival )'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음력 4월 8일에 청차우(Cheung Chau, 長州)라는 섬에서 흥미로운 순유와 '빵 따기' 경기가 있어요. 귀신들을 달래기를 목적으로 시작한 전통입니다.

낮에는 청차우에서 사는 아이들이 옛날 신화에 나온 인물이나 사회에서 유명한 사람처럼 화장하고 예쁘게 옷을 입어요.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아이들이 죽마 타서 돌아다닙니다. 아이들이 보통 4~5살인데 오래동안 아주 높은 죽마를 타도 무서워하지 않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청차우 빵 축제는 낮보다 밤이 더 흥미롭거든요. 밤 12시에 '빵 따기' 시합이 시작합니다. 배가 고픈 귀신들에게 빵을 먹이고 만족시키기 위해서 분홍색과 하얀색 빵으로 15미터 높은 탑을 세웁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한 12명의 선수가 3분 안에 암벽등반처럼 빵탑에 올라가서 빵을 따요. 빵을 놓인 위치에 따라 점수가 달라집니다. 제일 높은 위치는 9점이고 중간은 3점, 아래쪽은 1점으로 세고 제일 높은 점수를 받은 선수가 일등합니다. 선수들의 빵따기 기법을 보면서 관객들이 큰 소리로 응원합니다. 분위기가 최고예요.



빵탑의 벽돌이 되는 빵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빵 위에 한자로 평안(平安)을 쓰고 그 뜻은 편하게 잘 사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주민들이 불탄일에 그 빵을 먹는 것이 관습이 되었겠죠? 그런데 이 빵 때문에 주민들이 편하지 않고 한 번 큰 사고가 날 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빵따기 시합이 시작되면 주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한 번 빵탑이 무너지고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사망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빵 축제를 금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통적인 관습이 살아지지 않도록 청차우 섬에서 사는 사람들이 몇년 동안 정부에게 다시 축제를 열어 달라고 요구했어요. 다행이 정부가 주민들을 들어 주고 빵따기 시합을 안전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홍콩에 오신날 때쯤 가 보시면 한 번 그 맛있는 빵 좀 드셔 보세요. 



글쓴이: 려영혼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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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근로자나 학생들은 항상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이 하도 많아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때가 있죠? 못 믿겠지만 우리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선조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미 예상했나 봐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맛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했으니까요. 밥이 너무 맛있어서 바빠도 누구나 시간을 비워 둘 수 있더라고요.



● 치킨라이스(Chicken Rice)

우리 할아버지 시대는 말레이시아의 교육제도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아서 청년이든 성인이든 사람들이 대개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했다. 옛날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생간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할아버지께서 매일 식사할 때 꼭 고기를 먹드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시대에는 와이프가 남편에게 치킨라이스를 도시락으로 싸 주었다고 합니다. 편하고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라이스를 뭉쳐서 밥을동그랗게 만들었어요. 이 이야기는 제 고향인 말라카에서 가장 유명한 동그란 치킨라이스의 배경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원래 닭이 옥수수를 먹고 자연스럽게 성장하기 때문에 요리한 뒤에 닭의 피부색이 부뜨럽고 노래져요. 저도 지금까지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어쨌든 닭고기에 특별한 양념을 치니까 동그란 치킨라이스가 정말 먹을 만해요. 저는 한 10개쯤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있어요. 맛뿐만 아니라 모양도 특별해요. 옛날에 사람들이 만들고 먹었던 동그란 치킨라이스는 요즘보다 훨씬 더 크다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어요. 한국에서 동그란 치킨라이스가 없는 것 같지만 저는 고향이 생각나면 동그란 치킨라이스를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치킨라이스볼


● 첸돌(Cendol)

한국은 밭빙수가 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는 비슷한 후식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날씨가 항상 더우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해열 음식이 바로 첸돌입니다. 밭빙수와 비슷한데 들어 있는 재료가 조금 달라요. 첸돌은 재료가 많은데 얼음과 팥, 옥수수, 코코넛밀크, 코코넛 설탕, 판단(Pandan) 잎 쥬스로 만든 초록색 가루 등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을 때 첸돌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 사니까 빙수에 반했죠. 왜냐하면 둘이 다 맛있으니까요. 말레이시아에서 더운 하루를 보내는데 동그란 치킨 라이스를 먹고 시원한 후식을 먹으면서 얼마나 즐겁겠어요. 좋은 오후입니다!


첸돌(Cendol)



글쓴이: 후이민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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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장마의 습한 공기와 더불어 더운 날씨가 매일 계속되고 있네요. 이러한 나날에는 편안하게 잠깐 쉴 수 있는 카페에 가실 분도 많겠죠? 이번주는 카페에 관한 나고야와 한국의 인연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 카페가 많은 한국

제가 서울에 처음으로 왔을 때에 너무 많은 카페에 놀랐습니다. 서울 시내는 물론 교외에 가 보더라도 카페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도회지에서 떨어져 있는 시골 지역에도 카페는 반드시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페가 많습니다.



실은 제 고향인 나고야도 카페가 많다는 한국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고야에는 엄청나게 카페가 많기 때문에 '카페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 카페왕국으로서의 나고야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전통적인 다방과 같은, 저도 모르게 옛날 시절이나 고향이 생각나면 그리워지는 카페도 나고야에는 많이 있습니다. 나고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카페, '코메다 커피(コメダ珈琲店)'도 그러한 분위기가 풍깁니다.

코메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닝 서비스(아침 서비스)입니다. 아침에 커피를 한 잔 주문하면 토스트와 삶은 계란도 같이 나오는 서비스인데 굉장히 인기가 많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는 코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카페에서도 받을 수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침을 카페에서 먹는 사람도 나고야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많습니다. 휴일 아침에는 가족이 함께 카페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닝 서비스


이 밖에 인기 있는 메뉴는 '시로노와르(シロノワール)'와 '오구라 토스트(小倉トースト)'입니다. 시로노와르는 따뜻한 빵 위에 찬 아이스크림을 얹고 시럽을 뿌린 음식이며 코메다에서만 먹을 수 있습니다. 오구라 토스트는 잼 대신 팥을 발라서 먹는 토스트이며 나고야의 음식 명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메뉴판에 있는 사진보다 훨씬 큰 햄버거도 추천합니다. 사진을 보면 롯데리아나 맥도날드의 햄버거와 차이가 없는데 막상 테이블에 오니 큰 햄버거에 꼭 놀라실 겁니다.


시로노와르   오구라 토스트


코메다는 한국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체인점처럼 나고야 밖에서도 경영하고 있지만 나고야에서는 한국과 달리 개인이 경영하는 카페도 많이 남아 있고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유명한 개인 경영의 가게의 예로 독특한 메뉴로 유명한 '카페 마운틴(喫茶 マウンテン)'을 들 수 있습니다. 카페 마운틴에서는 가루녹차팥스파게티(스파게티면에 가루녹차가 들어 있고 위에 팥과 크림이 얹혀 있는 요리)나 딸기스파게티(스파게티면이 딸기 맛이고 윙에 딸기와 크림이 얹혀 있는 요리) 등과 같은 파격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보통의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가게도 나고야에는 많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루녹차팥스파게티


● 나고야 카페 문화의 배경

그러면 왜 나고야에서 카페 문화가 이렇게 발달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옛날부터 나고야에서는 다도(茶道)가 성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나고야에서는 가루녹차가 잘 생산되어 왔기 때문에 집에서 손님을 모실 때는 가루녹차를 제공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습관이 변화되어서 현재에는 차와 관련이 깊은 카페가 확대되었다고 봅니다. 나고야 출신인 역사적 인물 중에서 한국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풍신수길)입니다. 차를 사랑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도에 정통한 센노리큐(千利休 / 천리휴)를 등용하며 그의 정치적 이용을 계기로 다도는 크게 발전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저렴한 가격에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나고야 사람의 기질입니다. 나고야 사람은 '오네우치(お値打ち)'라는 말을 매우 사랑합니다. 오네우치란 가격치고는 가치가 많다는 뜻입니다. 커피 한 잔 값을 치르면 토스트나 삶은 계란도 먹을 수 있다는 모닝 서비스는 바로 오네우치 정신을 나타내는 좋은 예입니다. 비싼 것을 좀처럼 사지 않기 때문에 나고야 사람을 구두쇠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비판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나고야 사람은 비싼 것이 아니라 가격에 걸맞지 않은 것을 사기 싫어한다고 봐야 됩니다. 한 제품의 가격이 비싸더라도 가격 이상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면 나고야 사람은 기꺼이 그 제품을 구입합니다. 카페의 음식은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 비싸지만 가격을 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나고야 사람은 카페에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페가 생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고야와 한국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따지고 보면 문화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 차이가 융합되면 어떨까요? 가정적인 분위기가 나는 나고야의 카페가 세련된 카페가 가득 차 있는 한국에 진출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궁금합니다.


글쓴이: 오오이 히로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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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뚝 빗물이 지붕에서 내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다. 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장마철이다. 시작된 지 오래 되었는데 기상 예보를 보니까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모양이다. 비가 오면 하늘이 캄캄해져서 그런지 사람의 마음도 흐리게 하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서 나가면 신발과 옷 모두 다 더러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비가 좋다. 비가 오면 마음이 흐리다기보다는 이렇게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 속에서 나 혼자만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비가 좋은 이유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비를 바라보는 것에 나는 질리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추억들이 무엇인가와 맺어진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면 나의 어린 시절도 비와 맺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장마철의 다른 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던 어느 날, 그 날도 비옷에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양동이를 들고 동네 친구들이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나서 비옷을 걸치고 빗속으로 막 뛰쳐나갔다.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진창길을 맨 발로 걸어 골목 하나도 빠짐없이 동네를 돌아 다녔다. 비가 갈기갈기 찢어진 비옷에 스며들어 온몸을 적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듯 아무렇지도 않고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온 것이었다. 우리 동네는 연못과 도랑이 많아서 비가 오고 물이 불어날 때마다 물고기를 길에서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 한 마리가 보이면 모두 다 모여서 위쪽과 아래쪽, 왼쪽, 오른쪽 물고기가 도망갈 틈도 없을 만큼 사방을 막아 보았다. 하루 종일 잡은 물고기 10마리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1마리나 될까 해서 하나를 가지고 뿌듯한 기분으로 각자의 집을 돌아갔다. 먹을 수 있을 찌 없을지를 알 수 없어서 그냥 장난감처럼 놀고 지루할 때까지 구경하기만 하다가 다시 놓아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에 젖었기 때문에 나는 열이 난다든지 감기에 걸린다든지 아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핑계도 대지 못하고 반항도 못해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을 때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양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지, 병이 다 낫기만 하면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해 비를 맞아도 상관없이 또 친구를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우리는 항상 그런 식으로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들고 또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에 심심한 일이 하나도 없도록 날을 재미있는 일만으로 꽉 채우려 했다.

비가 아직 내리고 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컸는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비가 오면 그런 추억들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다 어리석고 사소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만 생각나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옛날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컸는데도 어린 시절의 그 모든 추억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니까 내 마음이 새삼 젊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비가 좋다. 


글쓴이: 원티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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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성격을 조사한 유명한 미국 학자가 밝혔다고 한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신고 있는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90% 이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확률이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모든 사람은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만 그 가운데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자꾸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미래를 부정적으로 평학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인 사람 덕분에 우리가 미래를 더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어 나가게 된다. 비관적인 사고방식이 낙관적인 사람들의 긍정적인 소신을 반대하기 때문에 걸림돌이 될 때가 있으나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가끔 더 맞는 것 같다.



● 비관적으로 보면 현실주의에 가까운 것들

첫 째는 미래의 환경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는 예를 보자. 우리 생활 편의가 점진적으로 개선한 것이 좋지만 그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발전을 위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 버렸나 보다. 사람들이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숲을 없애고 공장을 세우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나빠지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더군다나 심각한 공기 때문에 치명적인 질병도 생길 수도 있고 해결 방법을 개발할 겨를이 없다. 따라서 이 문제 에 관련해서 비관적인 사람들이 좋은 미래를 착각하는 대신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더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두 번째 예는 인간들이 자꾸 인간의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로봇과 스마트폰, 노트북, 지하철 등과 같은 편의 시설이 좋으나 이간들에게 장점 밖에 없느냐는 질문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으나 나태를 조장하고 사람을 게으르게 하는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계에 의존하게 되며 사람의 모든 것이 로봇과 같은 기술에 달려 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집안일이라도 로봇은 다 해 드림으로써 인간이 집에서 쉬는 것 밖에 안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비관적인 사람들이 미래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당한 것 같다.


글쓴이: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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