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란 단어에 사람들은 무서워하거나 어두운 면을 떠올린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교도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7번방의 선물>이라는 영화를 보고, 교도소의 개념에 대해 다시 살펴볼 시간을 가지게 됐다.



일단 이 영화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주인공은 정신장애가 있는 이용구와 그의 6살 딸 예승이에 대한, 한 부녀 간의 감동적인 스토리이다. 이용구는 딸에게 세일러문 가방을 사 주러 가는 길에 살인사건에 휩쓸리게 되고 교도소의 일곱 번째 방에 갇히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용구는 경찰청장에게서 죄를 뒤집어 쓰고 모함을 당하지만 그의 무죄를 믿는 사람은 딸 예승이 밖에 없다. 이용구는 7번 방의 '대빵' 대신 칼을 막아 주고, 죽을 뻔한 교도소장을 구해 주는 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기 시작한다. 잘 못 된 판결을 뒤집으려고 모두들 힘을 모았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어두운 현실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의와 맞서는 모습이 관객들의 눈시울을 촉촉히 적셨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 코미디로 나와 있지만 나에게 웃음을 주기보다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바보" 이용구에 대한 분노도 있고 철든 딸 예승이를 대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용구가 딸에게 생일을 지내면서 세일러문 가방을 주었을 때 나는 그가 사형을 실행할 것을 무의식으로 느꼈다. 교도소에서 딸과 마지막 이별장면은 너무 슬펐다. 이용구는 사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딸을 살리고 싶으면 죄를 인정하라는 협박을 받고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을까? 아빠의 죽음이 딸에게 무엇보다 큰 상처라는 것을...... 계속 살려 달라고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하고 외치는 아빠를 보면서 내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따뜻한 부성애 때문에 감동한 눈물인지, 어두운 사회에 대한 분노의 눈물인지, 아니면 그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쉬운 눈물인지. 이 세 가지 감정이 섞어서 나온 눈물일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잘 못했어요."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말 뿐이었고 그 장면이 가장 나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판결이 나고 사형실행 날짜가 확정되었을 때 교도소의 모든 죄수들이 총동원되어 이용구와 딸이 교도소를 떠날 수 있도록 열기구를 만들었다. 이용구와 딸이 같이 열기구를 타고 올라간 장면을 봤을 때 나는 얼마나 그 부녀가 함께 탈출하기를 간절히 원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나의 희망 뿐만 아니라 누구나 바라는 것이겠지만 두둥실 떠오르는 열기구는 철망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그 철망은 우리를 다시 현실로 끌어왔다. 그 철망은 우리를 꿈에서 깨워줬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불가능한 꿈이었다.

부성애를 소재로 스토리를 전개하여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 바보 같은 이용구가 아버지의 부정 그 따뜻한 사랑으로 관객을 울리게 됐다. 이용구는 결국 죽었지만 딸이 커서 아빠를 위해 죄명을 깨끗이 씻어 주는 것을 관객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에는 어두운 세력은 반드시 죄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과응보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매우 아쉽기도 했다.

맹자가 주장한 듯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죽음 앞에서도 딸만 있으면 행복한 용구를 보면서 나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세월에 흐름을 따라 부모들은 점점 늙어가고 있다. 한국에 유학하고 있는 나를 생각했을 때 부모님은 외로울 텐데 나는 옆에 없더라도 부모가 건강하고 잘 지내시길 기도했다.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가진 성스럽고 위대한 재산임으로 가족을 넘어 이웃과 어려운 지역까지 이 사랑이 넘쳐나기를 염원(念願)해 본다. 이용구와 예승이 보여 준 부녀 간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가족의 유대감이며 사랑의 본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글쓴이: 왕소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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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 위해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일년에 단 두 번만 외부 사람에게 문을 여는 '백흥암' 수행 도량의 비구니스님의 생활을 기록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여자들은 평소에 서울에서 살면서 매일 지하철과 식당, 쇼핑몰에서 보는 여자와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으로 감동을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도시 여자들과 비교하면 외모도 자연스럽고 물질적인 욕심도 없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하고 명품 핸드백만 사면 행복이 온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비구니스님의 모습이 참 좋았다.

놀라운 것은 또 하나 있다. 보통 스님 생활을 하겠다고 제일 먼저 '얼마나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가족, 친구들 떠나야 되고 산속 사원에 갇혀 살아야 되고..... 음식까지 언제든지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없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영자는 비구니스님이 되기 위해 머리부터 자르는 슬픈 순간부터 시작하지만 익숙해 보면 웃음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힘든 부분도 있지만은 나눔의 즐거움, 그리고 자기 자신 안에 길을 찾는 기쁨이 더 큰 것 같았다.


글쓴이: 카리나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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