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 딸 중 넷째로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 했기 때문에 예외없이 어린 나를 포함해서 우리 자매는 모두 아들 몫까지 감당해야 했다. 우리 집은 쌀 장사를 했다. 잘 팔려면 일찍 안 나가면 안 되어서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가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가곤 했다. 시장에 가면 장날이 끝날 때까지 엄마 옆에서 앉아 기다릴 뿐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손님에게 양이 많은 주문이 들어오면 멀리 있는데도 직접 가져다 드려야 했다. 엄마랑 아빠는 무거운 쌀자루를 수레에 실어 엄마는 앞자리에서, 나와 언니는 뒷자리에서 술레를 그렇게 밀고 가면서 쌀을 팔았던 기억들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다 하고 나서 엄마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쌀국수 한 그릇을 사 주면 나는 더 기쁠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녹두가 가공된 후 불량한 것을 고르는 일. 언니랑 같이 가서 했던 일인데 아직 어려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기만 했지, 잘 못한다면서 며칠 만에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잘렸다. 중학교 때 사탕을 포장하는 일도 해 봤다. 지금 모두 기계로 만들지만 옛날에 다 손으로 만들어졌으니까. 해가 뜨나 비가 오나, 여름에도 겨울에도 상관없이 자전거를 타고 공장으로 갔다. 1킬로 700동(đồng, 한국 돈으로 약 37원)이었다. 계속 하다 보니까 냄새가 날 정도로 두 번째 손톱이 거의 다 뜯겨질지라도 빠진 날은 하루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그렇게 살아 왔었다. 그런데도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은 것이었다. 어려움을 극복해서 고등학교 때 나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서 중학교 때 우리 반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내가 점점 인정을 받게 되었다.

대학교는 그동안 거두어 온 성과를 바탕으로 나는 항상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낮에 학교를 다니고 집에 돌아오면 선생님이 낸 숙제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스스로 찾은 과제도 열심히 해싿. 어떤 일이든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열심히 할수록 점수는 툭 떨어졌다. 그래서 장학금은커녕 나는 여전히 친구에게 인정을 못 받았던 것이다. 반대로 내가 공부에 신경을 잘 안 썼을 때는 왠지 나도 모르게 점수가 올랐지. 그 때부터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나는 다른 친구 못지않게 1등이 아니더라도 2등, 아니면 3등을 하고 싶은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에 열정을 기울여서 내 꿈이었더 장학금까지 받고 이제 한국에 와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게느냐면서 부러움을 표현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벗으며 꽃입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시를 보니까 나의 인생도 바람과 비를 맞으며 피어가는 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은 나에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그래도 그런 어려움 덕분에 내가 지금처럼 성숙해지고 강해진 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늘 나의 죄우명이다.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은 성공한 사람에게 쓸모없는 것이다. 인생에서 실패해야 앞으로 그 실패를 다시 한 번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성공할 수 있다. 꿈이 필요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련에 부딛쳐도 극복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쓴이: 원티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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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근로자나 학생들은 항상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이 하도 많아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때가 있죠? 못 믿겠지만 우리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선조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미 예상했나 봐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맛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했으니까요. 밥이 너무 맛있어서 바빠도 누구나 시간을 비워 둘 수 있더라고요.



● 치킨라이스(Chicken Rice)

우리 할아버지 시대는 말레이시아의 교육제도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아서 청년이든 성인이든 사람들이 대개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했다. 옛날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생간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할아버지께서 매일 식사할 때 꼭 고기를 먹드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시대에는 와이프가 남편에게 치킨라이스를 도시락으로 싸 주었다고 합니다. 편하고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라이스를 뭉쳐서 밥을동그랗게 만들었어요. 이 이야기는 제 고향인 말라카에서 가장 유명한 동그란 치킨라이스의 배경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원래 닭이 옥수수를 먹고 자연스럽게 성장하기 때문에 요리한 뒤에 닭의 피부색이 부뜨럽고 노래져요. 저도 지금까지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어쨌든 닭고기에 특별한 양념을 치니까 동그란 치킨라이스가 정말 먹을 만해요. 저는 한 10개쯤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있어요. 맛뿐만 아니라 모양도 특별해요. 옛날에 사람들이 만들고 먹었던 동그란 치킨라이스는 요즘보다 훨씬 더 크다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어요. 한국에서 동그란 치킨라이스가 없는 것 같지만 저는 고향이 생각나면 동그란 치킨라이스를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치킨라이스볼


● 첸돌(Cendol)

한국은 밭빙수가 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는 비슷한 후식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날씨가 항상 더우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해열 음식이 바로 첸돌입니다. 밭빙수와 비슷한데 들어 있는 재료가 조금 달라요. 첸돌은 재료가 많은데 얼음과 팥, 옥수수, 코코넛밀크, 코코넛 설탕, 판단(Pandan) 잎 쥬스로 만든 초록색 가루 등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을 때 첸돌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 사니까 빙수에 반했죠. 왜냐하면 둘이 다 맛있으니까요. 말레이시아에서 더운 하루를 보내는데 동그란 치킨 라이스를 먹고 시원한 후식을 먹으면서 얼마나 즐겁겠어요. 좋은 오후입니다!


첸돌(Cendol)



글쓴이: 후이민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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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뚝 빗물이 지붕에서 내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다. 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장마철이다. 시작된 지 오래 되었는데 기상 예보를 보니까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모양이다. 비가 오면 하늘이 캄캄해져서 그런지 사람의 마음도 흐리게 하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서 나가면 신발과 옷 모두 다 더러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비가 좋다. 비가 오면 마음이 흐리다기보다는 이렇게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 속에서 나 혼자만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비가 좋은 이유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비를 바라보는 것에 나는 질리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추억들이 무엇인가와 맺어진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면 나의 어린 시절도 비와 맺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장마철의 다른 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던 어느 날, 그 날도 비옷에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양동이를 들고 동네 친구들이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나서 비옷을 걸치고 빗속으로 막 뛰쳐나갔다.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진창길을 맨 발로 걸어 골목 하나도 빠짐없이 동네를 돌아 다녔다. 비가 갈기갈기 찢어진 비옷에 스며들어 온몸을 적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듯 아무렇지도 않고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온 것이었다. 우리 동네는 연못과 도랑이 많아서 비가 오고 물이 불어날 때마다 물고기를 길에서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 한 마리가 보이면 모두 다 모여서 위쪽과 아래쪽, 왼쪽, 오른쪽 물고기가 도망갈 틈도 없을 만큼 사방을 막아 보았다. 하루 종일 잡은 물고기 10마리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1마리나 될까 해서 하나를 가지고 뿌듯한 기분으로 각자의 집을 돌아갔다. 먹을 수 있을 찌 없을지를 알 수 없어서 그냥 장난감처럼 놀고 지루할 때까지 구경하기만 하다가 다시 놓아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에 젖었기 때문에 나는 열이 난다든지 감기에 걸린다든지 아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핑계도 대지 못하고 반항도 못해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을 때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양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지, 병이 다 낫기만 하면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해 비를 맞아도 상관없이 또 친구를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우리는 항상 그런 식으로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들고 또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에 심심한 일이 하나도 없도록 날을 재미있는 일만으로 꽉 채우려 했다.

비가 아직 내리고 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컸는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비가 오면 그런 추억들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다 어리석고 사소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만 생각나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옛날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컸는데도 어린 시절의 그 모든 추억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니까 내 마음이 새삼 젊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비가 좋다. 


글쓴이: 원티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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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테드바드란?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해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특별한 경험이 떠오릅니다. 바로 아이스테드바드(Eisteddfod)였습니다. 아이스테드바드는 해마다 웨일스에서 개최되는 시와 음악 축제인데 웨일스의 전국민이 전통적과 현대적인 음악과 춤, 시 등의 경연에 참여해요. 그런데 아이스테드바드의 특징은 이 축제와 경연들이 모두 웨일스어로 개최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경연들은 우선 국지적으로 개최되는데 경연의 예선전을 통과하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결승전은 8월 초에 일주일 동안 개최됩니다. 아이스테드바드 경연 중에 가장 전통적이고 명망이 있는 상은 시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주는 상인데 시상식이 매우 특별한 행사입니다. 이 시상식은 900년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수상하는 사람이 전통적 옷을 입고 특제의 의자도 받아요. 아이스테드바드에서 다양한 경연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웨일스에 관한 다양한 의류와 음식, 공예품 등의 가판대도 축제 현장에 즐비해서 체험할 문화거리가 많아요. 아이스테드바드가 정말 가 볼 만한 축제라서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내내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축제에서 캠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아이스테드바드의 역사

아이스테드바드는 뿌리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당시에는 주로 부자들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인기가 줄어들고 사라질 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72년에 열러 머르간눅(Iolo Morgannwg)이라는 사람이 아이스테드바드를 다시 시작하고 원래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대중들에게 공개했습니다. 그 때부터 웨일스 사람들은 아이스테드바드가 웨일스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해외에 있는 웨일스 공동체들도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아이스테드바드를 개최합니다.


1882년



● 내가 체험한 아이스테드바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해마다 아이스테드바드에 참가했습니다. 처음 참가한 것은 7살 때 노래 경연에서 코끼리에 대한 노래를 불렀어요. 그 때부터 다양한 노래 경연에 나가고 피아노와 프렌치호른으로 음악 경연에도 참가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아이스테드바드는 15살 때 악기 합주 경연에 나갈 때였습니다. 저희 그룹이 결승전에 지출하고 텔레비전에 방송되었어요. 친구들과 같이 무대 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2등을 차지해서 아주 기뻤습니다. 그 경연 후에 축제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전통적인 음식을 먹는 것도 정말 좋은 추억이 되었어요.



아이스테드바드는 웨일스에서 틀림없이 최고의 문화 축제입니다. 이 축제를 통해서 웨일스의 전통적인 문화 유산을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스테드바드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축제가 웨일스어로 개최되어도 웨일스어에 능통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이 독특한 축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글쓴이: 베쓰 압글린 (영국의 웨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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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관과 낙관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중에 2가지 밖에 없는데 비관적인 사람하고 낙관적인 사람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낙관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성격에 따라 사고방식에, 특히 미래에 대한 생각인 경우 사람마다 차이가 많다. 그런데 비관적인 사람 생각처럼 살면 혼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미래가 밝아질 뿐만 아니라 심각한 문제도 점점 줄어들 수 있다.



●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서 핸드폰이 누구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와 상담하는 대신에 혼자서만 생각하고 자살하기까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젊은 사람들이 어디든지 가고 싶으면 꼭 핸드폰을 가져 간다. 핸드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현상을 다시 생각하면 핸드폰으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다. 미래 핸드폰하고 지금 핸드폰이 너무나 달라서 어떻게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미래 핸드폰은 확실히 더 발전한 앱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것 중에 물론 차가 있다. 어떤 학자들이 원래 여러가지 차를 만들었는데 아직도 요즘 삶의 방식에 따라 적당한 차가 없다. 왜냐하면 요즘은 나오는 차들이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오랫동안 차로 멀리 가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낙관적인 사람들은 최선을 다 한다면 우리들이 상상했던 것과 똑같이 새로운 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낙관적인 사람들 덕분에 미래의 차가 배처럼 물에서 다닐 수도 있고 비행기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기름을 쓰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는 물로 다닌다면 나중에 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위기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쓴이: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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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국기


● 나는 웨일스에서 왔다

한국에서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저는 영국의 웨일스(Wales)에서 왔다고 하면 상대방이 주로 '와! 라이언 긱스(Ryan Giggs), 최고의 웨일스 축구 선수!'라고 하거나 '요즘 웨일스 축구 팀에 한국 선수가 많죠'라고 하면서 반응합니다. 요즘 웨일스 축구의 알려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도 웨일스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있어요. 몇 개월 전에 스완지 시티(Swansea City) 축구 팀은 코엑스(COEX) 쇼핑몰에 붙어 있는 막대한 포스터에 있었습니다




● 웨일스에서는 영어만 쓰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실은 웨일스가 축구 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웨일스는 영국(Great Britain)을 구성하는 4개국의 하나인데 잉글랜드(England)와 달리 2개의 공용어, 영어와 웨일스어(Welsh)가 있습니다. 영국의 지난 인구 조사에 의하면 웽일스 사람 중에 20%가 웨일스어에 능통한데 그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웨일스의 교육에 대한 수요도 증가되고 있습니다.



● 웨일스어 몰입 학교

지금 웨일스의 학교는 보통 영어 학교와 웨일스어 몰입 학교의 2 가지가 있습니다. 영어 학교도 웨일스어 수업이 필수 과목인데 웨일스 몰입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영어 수업 외에는 모든 수업을 웨일스어로 듣습니다. 제 부모님은 웨일스어에 능통해서 저를 웨일스어 학교에 보내기로 하셨어요. 제 부모님이 이 선택을 해 주셔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웨일스어 학교를 다님으로써 웨일서와 영어 두 언어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계기였어요. 따라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일본어를 전공하고 한국과 한국어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되고 나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웨일스어


웨일스 학교는 재미있을 때가 많은가 하면 힘들 때도 있죠. 예를 들어 대부분의 웨일스어 학교가 학생들이 웨일스어를 잘 배우기 위해서 영어 수업이 아닌 시간에 영어를 금지합니다. 학생들이 이 규칙을 안 지키면 선생님이 방과 후에 그 학생을 학교에 넘게 하거나 쉬는 시간에 혼자 숙제를 하게 하는 벌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때 이런 규칙을 지키지 않고 선생님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우리 친구들끼리 보호 워드를 썼어요. 만약에 우리가 영어를 말하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이 선생님이 우리에 접근하는 것을 본다면 빨리 보호 웨드를 말하고 우리가 순식간에 웨일스어로 바꾸곤 했어요. 되돌아보면 이렇게 빨리 영어와 웨일스어, 양쪽 말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자랑스럽습니다.

요즘 웨일스인들은 웨일스의 문화 유산을 봊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어서 웨일스어 교육을 매우 중시합니다. 불경기가 계속되고 웨일스에서 취업난이 심해지면서도 웨일스어에 능통한 사람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글쓴이: 베쓰 압글린 (영국의 웨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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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기대회 소개

오늘 7월 18일 오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가 말하기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 17명이 3분의 길이로 자유주제에 대해서 발표를 하고 중간 중간에 춤과 노래, 등의 다양한 문화적 공연이 있는 자리입니다.


인기상 수상자 4급 바반 서지환 씨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매년 여름학기에 4급 이상으로 반마다 대표 한 명이 참여하는 행사로서 언어교육원의 가장 좋은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과 한국에 대한 이해를 보여 줍니다. 발표는 내용과 정확성, 유창성, 발표력, 준비성 등의 심사 기준으로 평가되며, 30만원 최우수상 하나와 10만원 우수상 3편, 5만원 인기상 2편을 가장 잘하는 학생들에게 시상했습니다.

중국과 미국, 일본, 포르투갈, 말레이시아 등의 다양한 국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의 발표 주제는 한국의 전통적 건축과 신속함을 중시하는 현대 한국 문화부터 중국과 한국의 포장마차 문화를 비교하는 것까지, 한국에서 한국말으로 배우고 생활하면서 학생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일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담았습니다.


우수상 수상자 6급 나반 현영은 씨


● 이번 대회 수상자들의 이야기

1.) 인기상

인기상을 탄 4급 바반 학생, 스페인에서 온 서지환(Juan Pablo Postigo) 씨는 "한국 사람이 되고 싶으면"이라는 발표로 외국인이 한국사람처럼 성형하지도 못하고 군대에 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고 한국음식을 익숙해지려고 하고 한글을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인기상을 탄 5급 가반 학생 존 씨는 "미세요? 당기세요?"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기대했던 밀당이 아니라, 한국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문을 왜 안 잡아 주느냐고 질문을 던지고 앞으로 문 매너를 챙겨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2.) 우수상과 최우수상

오늘의 우수상 수상자들도 재미있는 이야기들 들려 주었는데 일본에서 온 4급 나반 학생, 아야카 씨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주제로 "한국 남자친구를 만드는 방법"엗 ㅐ해서 발표하면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샀습니다. 아야카 씨에 따르면 외국인이 한국 남자친구를 사귀는 비결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많이 만나라'를 규칙으로 삼고 소개팅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거예요. 두번째,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 남자와 만나 보면서 조건을 나열한 체크리스트는 외모와 재산, 성격의 3가지만으로 시작했지만 오늘까지 남자다운 남자와 군복무를 마친 남자, 식탁 매너를 지키는 남자 등을 포함해서 7개 이상으로 늘었다면서 아야카 씨가 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우수상 수상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대해서 발표한 영국 학생, 5급 가반 베쓰 시와 신속함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해 준 6급 나반 학생 현영은 씨(미국)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최우수상 수상자는 지리산 종주 코스를 도전한 경험을 한국어 배우기의 비유로 이야기해 준 5급 나반 고윤아 씨였습니다.


최우수상 수상자 5급 나반 고윤아 씨


● 필자의 견해

수상자들 이외에 아주 훌륭한 한국어 실력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준 학생들도 있었는데요. 특히 포르투갈에서 온 5급 오후반 학생 이네쉬 씨가 아주 유창하게 한국말 배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국어를 처음 배워 볼 때 한국의 모든 것들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언어를 한국어 실력을 키워 보는 것만으로 한국을 보는 눈도 맑아지고 이 나라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으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아주 정확한 발언이라고 생각들었습니다.


연구반 학생 원티쩜 씨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의 말하기 대회는 매년 7월에 개최되고 해마다 다양한 학생들의 참여로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쏘다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학생들의 참여가 기대되지만 다음 대회까지 일년 더 기다려야 되겠네요.


글쓴이: 타일러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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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에 서울대 외국인 학생 2명이 설립한 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 특히 서울은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21세기의 불가한 세계화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하면, 그 반면에 상호의사소통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이에 수반되는 오해와 선입견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상황이 풀리지 않아 오해와 선입견이 편견이 되고 서로에게 차별을 두며 혐오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더 조화롭게 살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Seoulism은 진심이 담긴 상호의사소통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폭넓은 창을 통하여 커뮤니케이션을 상호적으로 이루는 웹진 매체를 택했죠.


Seoulism 회원의 국적: 러시아, 몽골, 베트남, 일본, 파키스탄, 리투아니아, 미국, 영국, 중국, 페루, 말레이시아,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터키


Seoulism은 외국인 글쓴이와 한국인 독자 모두에게 보람찬 경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한국어로 글을 쓰고 한국말을 습득하게 함으로써 외국인 학생은 한국에서 수준 높고 뜻 깊은 생활을 하게 되며 한국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긍정적으로 개선됩니다. Seoulism을 방문하는 귀하신 독자분들은 국제학생의 관점을 접하고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게 됨으로써 외국인이라는, 새로운 이웃과 공감할 수 있게 되십니다.


한국의 위상이 전 세계로 뻗어나감에 따라 서울에서 공부하는 주한 유학생 수가 늘 수밖에 없습니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면 주한 유학생 수가 83,000명을 넘었는데 정부의 예측을 따르면 2020년까지만 해도 200,000명이나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친하게 지내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Seoulism에 오르는 글들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Seoulism 국제학생 잡지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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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 타일러 라쉬

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ntact Me: 운영자메일주소




  1. jieun

    2013.08.09 16:23 신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울은커녕 한국이 전국적으로 높은 수준과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문장이 어색한 것 같아서 댓글 남겨요 :-)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 특히 서울은 점차 높은 수준과 빠른 속도록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커녕 이라는 말은 ex) 밥을 먹기는 커녕, 물 한 잔도 못 마셨다. 이라는 문장과 같이 그 뒤에 앞의 문장에 비해 부정적인 의미로 강조하는 문장이 나오게 됩니다.

    seoulism 응원할게요!

    • seoulism

      2013.08.10 21:53 신고


      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지은님과 같은, 적극적인 독자분 덕분에 많이 배우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 Lake of shaman

    2013.11.08 03:44 신고


    보조사 '~커녕'은 앞에 단어와 띄어쓰지 않습니다. 즉, 붙여씁니다.

    ex) "밥을 먹기는커녕, 물 한 잔도 못 마셨다."

    아래는 '뜻'이니 참고바랍니다.

    커녕

    [조사]
    1.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그보다 덜하거나 못한 것까지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2.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유의어] 새로에, 고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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