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근로자나 학생들은 항상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이 하도 많아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때가 있죠? 못 믿겠지만 우리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선조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미 예상했나 봐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맛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했으니까요. 밥이 너무 맛있어서 바빠도 누구나 시간을 비워 둘 수 있더라고요.



● 치킨라이스(Chicken Rice)

우리 할아버지 시대는 말레이시아의 교육제도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아서 청년이든 성인이든 사람들이 대개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했다. 옛날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생간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할아버지께서 매일 식사할 때 꼭 고기를 먹드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시대에는 와이프가 남편에게 치킨라이스를 도시락으로 싸 주었다고 합니다. 편하고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라이스를 뭉쳐서 밥을동그랗게 만들었어요. 이 이야기는 제 고향인 말라카에서 가장 유명한 동그란 치킨라이스의 배경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원래 닭이 옥수수를 먹고 자연스럽게 성장하기 때문에 요리한 뒤에 닭의 피부색이 부뜨럽고 노래져요. 저도 지금까지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어쨌든 닭고기에 특별한 양념을 치니까 동그란 치킨라이스가 정말 먹을 만해요. 저는 한 10개쯤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있어요. 맛뿐만 아니라 모양도 특별해요. 옛날에 사람들이 만들고 먹었던 동그란 치킨라이스는 요즘보다 훨씬 더 크다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어요. 한국에서 동그란 치킨라이스가 없는 것 같지만 저는 고향이 생각나면 동그란 치킨라이스를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치킨라이스볼


● 첸돌(Cendol)

한국은 밭빙수가 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는 비슷한 후식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날씨가 항상 더우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해열 음식이 바로 첸돌입니다. 밭빙수와 비슷한데 들어 있는 재료가 조금 달라요. 첸돌은 재료가 많은데 얼음과 팥, 옥수수, 코코넛밀크, 코코넛 설탕, 판단(Pandan) 잎 쥬스로 만든 초록색 가루 등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을 때 첸돌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 사니까 빙수에 반했죠. 왜냐하면 둘이 다 맛있으니까요. 말레이시아에서 더운 하루를 보내는데 동그란 치킨 라이스를 먹고 시원한 후식을 먹으면서 얼마나 즐겁겠어요. 좋은 오후입니다!


첸돌(Cendol)



글쓴이: 후이민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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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ntact Me: 운영자메일주소




안녕하십니까? 장마의 습한 공기와 더불어 더운 날씨가 매일 계속되고 있네요. 이러한 나날에는 편안하게 잠깐 쉴 수 있는 카페에 가실 분도 많겠죠? 이번주는 카페에 관한 나고야와 한국의 인연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 카페가 많은 한국

제가 서울에 처음으로 왔을 때에 너무 많은 카페에 놀랐습니다. 서울 시내는 물론 교외에 가 보더라도 카페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도회지에서 떨어져 있는 시골 지역에도 카페는 반드시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페가 많습니다.



실은 제 고향인 나고야도 카페가 많다는 한국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고야에는 엄청나게 카페가 많기 때문에 '카페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 카페왕국으로서의 나고야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전통적인 다방과 같은, 저도 모르게 옛날 시절이나 고향이 생각나면 그리워지는 카페도 나고야에는 많이 있습니다. 나고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카페, '코메다 커피(コメダ珈琲店)'도 그러한 분위기가 풍깁니다.

코메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닝 서비스(아침 서비스)입니다. 아침에 커피를 한 잔 주문하면 토스트와 삶은 계란도 같이 나오는 서비스인데 굉장히 인기가 많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는 코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카페에서도 받을 수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침을 카페에서 먹는 사람도 나고야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많습니다. 휴일 아침에는 가족이 함께 카페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닝 서비스


이 밖에 인기 있는 메뉴는 '시로노와르(シロノワール)'와 '오구라 토스트(小倉トースト)'입니다. 시로노와르는 따뜻한 빵 위에 찬 아이스크림을 얹고 시럽을 뿌린 음식이며 코메다에서만 먹을 수 있습니다. 오구라 토스트는 잼 대신 팥을 발라서 먹는 토스트이며 나고야의 음식 명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메뉴판에 있는 사진보다 훨씬 큰 햄버거도 추천합니다. 사진을 보면 롯데리아나 맥도날드의 햄버거와 차이가 없는데 막상 테이블에 오니 큰 햄버거에 꼭 놀라실 겁니다.


시로노와르   오구라 토스트


코메다는 한국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체인점처럼 나고야 밖에서도 경영하고 있지만 나고야에서는 한국과 달리 개인이 경영하는 카페도 많이 남아 있고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유명한 개인 경영의 가게의 예로 독특한 메뉴로 유명한 '카페 마운틴(喫茶 マウンテン)'을 들 수 있습니다. 카페 마운틴에서는 가루녹차팥스파게티(스파게티면에 가루녹차가 들어 있고 위에 팥과 크림이 얹혀 있는 요리)나 딸기스파게티(스파게티면이 딸기 맛이고 윙에 딸기와 크림이 얹혀 있는 요리) 등과 같은 파격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보통의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가게도 나고야에는 많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루녹차팥스파게티


● 나고야 카페 문화의 배경

그러면 왜 나고야에서 카페 문화가 이렇게 발달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옛날부터 나고야에서는 다도(茶道)가 성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나고야에서는 가루녹차가 잘 생산되어 왔기 때문에 집에서 손님을 모실 때는 가루녹차를 제공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습관이 변화되어서 현재에는 차와 관련이 깊은 카페가 확대되었다고 봅니다. 나고야 출신인 역사적 인물 중에서 한국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풍신수길)입니다. 차를 사랑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도에 정통한 센노리큐(千利休 / 천리휴)를 등용하며 그의 정치적 이용을 계기로 다도는 크게 발전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저렴한 가격에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나고야 사람의 기질입니다. 나고야 사람은 '오네우치(お値打ち)'라는 말을 매우 사랑합니다. 오네우치란 가격치고는 가치가 많다는 뜻입니다. 커피 한 잔 값을 치르면 토스트나 삶은 계란도 먹을 수 있다는 모닝 서비스는 바로 오네우치 정신을 나타내는 좋은 예입니다. 비싼 것을 좀처럼 사지 않기 때문에 나고야 사람을 구두쇠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비판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나고야 사람은 비싼 것이 아니라 가격에 걸맞지 않은 것을 사기 싫어한다고 봐야 됩니다. 한 제품의 가격이 비싸더라도 가격 이상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면 나고야 사람은 기꺼이 그 제품을 구입합니다. 카페의 음식은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 비싸지만 가격을 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나고야 사람은 카페에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페가 생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고야와 한국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따지고 보면 문화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 차이가 융합되면 어떨까요? 가정적인 분위기가 나는 나고야의 카페가 세련된 카페가 가득 차 있는 한국에 진출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궁금합니다.


글쓴이: 오오이 히로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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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뚝 빗물이 지붕에서 내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다. 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장마철이다. 시작된 지 오래 되었는데 기상 예보를 보니까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모양이다. 비가 오면 하늘이 캄캄해져서 그런지 사람의 마음도 흐리게 하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서 나가면 신발과 옷 모두 다 더러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비가 좋다. 비가 오면 마음이 흐리다기보다는 이렇게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 속에서 나 혼자만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비가 좋은 이유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비를 바라보는 것에 나는 질리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추억들이 무엇인가와 맺어진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면 나의 어린 시절도 비와 맺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장마철의 다른 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던 어느 날, 그 날도 비옷에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양동이를 들고 동네 친구들이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나서 비옷을 걸치고 빗속으로 막 뛰쳐나갔다.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진창길을 맨 발로 걸어 골목 하나도 빠짐없이 동네를 돌아 다녔다. 비가 갈기갈기 찢어진 비옷에 스며들어 온몸을 적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듯 아무렇지도 않고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온 것이었다. 우리 동네는 연못과 도랑이 많아서 비가 오고 물이 불어날 때마다 물고기를 길에서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 한 마리가 보이면 모두 다 모여서 위쪽과 아래쪽, 왼쪽, 오른쪽 물고기가 도망갈 틈도 없을 만큼 사방을 막아 보았다. 하루 종일 잡은 물고기 10마리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1마리나 될까 해서 하나를 가지고 뿌듯한 기분으로 각자의 집을 돌아갔다. 먹을 수 있을 찌 없을지를 알 수 없어서 그냥 장난감처럼 놀고 지루할 때까지 구경하기만 하다가 다시 놓아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에 젖었기 때문에 나는 열이 난다든지 감기에 걸린다든지 아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핑계도 대지 못하고 반항도 못해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을 때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양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지, 병이 다 낫기만 하면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해 비를 맞아도 상관없이 또 친구를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우리는 항상 그런 식으로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들고 또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에 심심한 일이 하나도 없도록 날을 재미있는 일만으로 꽉 채우려 했다.

비가 아직 내리고 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컸는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비가 오면 그런 추억들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다 어리석고 사소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만 생각나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옛날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컸는데도 어린 시절의 그 모든 추억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니까 내 마음이 새삼 젊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비가 좋다. 


글쓴이: 원티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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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테드바드란?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해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특별한 경험이 떠오릅니다. 바로 아이스테드바드(Eisteddfod)였습니다. 아이스테드바드는 해마다 웨일스에서 개최되는 시와 음악 축제인데 웨일스의 전국민이 전통적과 현대적인 음악과 춤, 시 등의 경연에 참여해요. 그런데 아이스테드바드의 특징은 이 축제와 경연들이 모두 웨일스어로 개최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경연들은 우선 국지적으로 개최되는데 경연의 예선전을 통과하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결승전은 8월 초에 일주일 동안 개최됩니다. 아이스테드바드 경연 중에 가장 전통적이고 명망이 있는 상은 시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주는 상인데 시상식이 매우 특별한 행사입니다. 이 시상식은 900년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수상하는 사람이 전통적 옷을 입고 특제의 의자도 받아요. 아이스테드바드에서 다양한 경연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웨일스에 관한 다양한 의류와 음식, 공예품 등의 가판대도 축제 현장에 즐비해서 체험할 문화거리가 많아요. 아이스테드바드가 정말 가 볼 만한 축제라서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내내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축제에서 캠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아이스테드바드의 역사

아이스테드바드는 뿌리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당시에는 주로 부자들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인기가 줄어들고 사라질 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72년에 열러 머르간눅(Iolo Morgannwg)이라는 사람이 아이스테드바드를 다시 시작하고 원래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대중들에게 공개했습니다. 그 때부터 웨일스 사람들은 아이스테드바드가 웨일스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해외에 있는 웨일스 공동체들도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아이스테드바드를 개최합니다.


1882년



● 내가 체험한 아이스테드바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해마다 아이스테드바드에 참가했습니다. 처음 참가한 것은 7살 때 노래 경연에서 코끼리에 대한 노래를 불렀어요. 그 때부터 다양한 노래 경연에 나가고 피아노와 프렌치호른으로 음악 경연에도 참가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아이스테드바드는 15살 때 악기 합주 경연에 나갈 때였습니다. 저희 그룹이 결승전에 지출하고 텔레비전에 방송되었어요. 친구들과 같이 무대 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2등을 차지해서 아주 기뻤습니다. 그 경연 후에 축제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전통적인 음식을 먹는 것도 정말 좋은 추억이 되었어요.



아이스테드바드는 웨일스에서 틀림없이 최고의 문화 축제입니다. 이 축제를 통해서 웨일스의 전통적인 문화 유산을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스테드바드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축제가 웨일스어로 개최되어도 웨일스어에 능통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이 독특한 축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글쓴이: 베쓰 압글린 (영국의 웨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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