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 날은 무슨 날인지 모르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바로 세종대왕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한 백성을 생각해서 만든 복잡하고 어려운 한자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쉽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다. 특히 2013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된 것을 보면 한글날은 더더욱 의미가 있고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날은 한국 국민들에게만 중요한 날일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전세계의 학생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날이다.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다. 1992년 한-베 두 나라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경제, 문화, 사회 등 교류사업이 활발하게 진행해 왔을 뿐더러 한국어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노이 국립 외국어 대학교만 해도 매년 한국어한국문화학부 신입생의 수가 100명 넘으며 증가하고 있는 경향이 보인다.





10월 9일이 지났으니 한글날이 났는가?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베트남에서 며칠 전까지는 한글날의 정신이 아직 살아 있으며 뜨거웠다. 지난 11월 2일에 아시아나항공, 한국 외대 등의 후원과 함께 한-베문화교류센터 및 LG전자, LINE 공동으로 주최한 '도전 황금징(黃金澄)을 올려라!'라는 연례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번에 베트남 북부지방에 한국어를 교육하는 국리외대, 하노이대, 인문사대 등의 6 대학교를 대표하는 학생들 총 100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한국, 베트남, 외국에 관련된 자식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되는데 모든 질문은 한글로 써야 됐던 것이다. 2 시간 정도 걸쳐 질문 30개가 다 끝난 다음에 결국 97명을 뛰어넘어 우승자들을 찾게 됐다. 3등은 하노이대학교 학생, 2등은 국립외대의 학생이 땄으며 무대로 올라가 황금징을 올린 학생도 국립외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대회에서 겨우 4년동안 1등을 못했던 국립외대에 금번에 우승장의 자리로 올라간 학생 1명이 있고 또 1명이 학생이 2등을 했으니 사범대학교 강당이 응원하러 온 친구들의 외침으로 무너질 것 같았다. 상을 탄 것은 그저 자신의 기쁜 뿐만 아니라 국립외대 한국언어문화학부의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의 자랑이고 영광이었다. 3등은 전자레인지, 2등은 LG 컴퓨터 스크린, 그리고 1등은 LG G2 스마트폰과 한국외대 1개월 어학연수상을 받게 됐다.





그 외에 오후에 베트남의 한국 유학생들을 위한 퀴즈대회 베트남어 부문과 자선바자회의 진행으로 끝났다.


글쓴이: 원티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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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 딸 중 넷째로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 했기 때문에 예외없이 어린 나를 포함해서 우리 자매는 모두 아들 몫까지 감당해야 했다. 우리 집은 쌀 장사를 했다. 잘 팔려면 일찍 안 나가면 안 되어서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가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가곤 했다. 시장에 가면 장날이 끝날 때까지 엄마 옆에서 앉아 기다릴 뿐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손님에게 양이 많은 주문이 들어오면 멀리 있는데도 직접 가져다 드려야 했다. 엄마랑 아빠는 무거운 쌀자루를 수레에 실어 엄마는 앞자리에서, 나와 언니는 뒷자리에서 술레를 그렇게 밀고 가면서 쌀을 팔았던 기억들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다 하고 나서 엄마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쌀국수 한 그릇을 사 주면 나는 더 기쁠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녹두가 가공된 후 불량한 것을 고르는 일. 언니랑 같이 가서 했던 일인데 아직 어려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기만 했지, 잘 못한다면서 며칠 만에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잘렸다. 중학교 때 사탕을 포장하는 일도 해 봤다. 지금 모두 기계로 만들지만 옛날에 다 손으로 만들어졌으니까. 해가 뜨나 비가 오나, 여름에도 겨울에도 상관없이 자전거를 타고 공장으로 갔다. 1킬로 700동(đồng, 한국 돈으로 약 37원)이었다. 계속 하다 보니까 냄새가 날 정도로 두 번째 손톱이 거의 다 뜯겨질지라도 빠진 날은 하루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그렇게 살아 왔었다. 그런데도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은 것이었다. 어려움을 극복해서 고등학교 때 나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서 중학교 때 우리 반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내가 점점 인정을 받게 되었다.

대학교는 그동안 거두어 온 성과를 바탕으로 나는 항상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낮에 학교를 다니고 집에 돌아오면 선생님이 낸 숙제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스스로 찾은 과제도 열심히 해싿. 어떤 일이든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열심히 할수록 점수는 툭 떨어졌다. 그래서 장학금은커녕 나는 여전히 친구에게 인정을 못 받았던 것이다. 반대로 내가 공부에 신경을 잘 안 썼을 때는 왠지 나도 모르게 점수가 올랐지. 그 때부터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나는 다른 친구 못지않게 1등이 아니더라도 2등, 아니면 3등을 하고 싶은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에 열정을 기울여서 내 꿈이었더 장학금까지 받고 이제 한국에 와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게느냐면서 부러움을 표현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벗으며 꽃입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시를 보니까 나의 인생도 바람과 비를 맞으며 피어가는 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은 나에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그래도 그런 어려움 덕분에 내가 지금처럼 성숙해지고 강해진 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늘 나의 죄우명이다.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은 성공한 사람에게 쓸모없는 것이다. 인생에서 실패해야 앞으로 그 실패를 다시 한 번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성공할 수 있다. 꿈이 필요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련에 부딛쳐도 극복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쓴이: 원티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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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뚝 빗물이 지붕에서 내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다. 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장마철이다. 시작된 지 오래 되었는데 기상 예보를 보니까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모양이다. 비가 오면 하늘이 캄캄해져서 그런지 사람의 마음도 흐리게 하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서 나가면 신발과 옷 모두 다 더러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비가 좋다. 비가 오면 마음이 흐리다기보다는 이렇게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 속에서 나 혼자만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비가 좋은 이유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비를 바라보는 것에 나는 질리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추억들이 무엇인가와 맺어진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면 나의 어린 시절도 비와 맺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장마철의 다른 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던 어느 날, 그 날도 비옷에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양동이를 들고 동네 친구들이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나서 비옷을 걸치고 빗속으로 막 뛰쳐나갔다.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진창길을 맨 발로 걸어 골목 하나도 빠짐없이 동네를 돌아 다녔다. 비가 갈기갈기 찢어진 비옷에 스며들어 온몸을 적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듯 아무렇지도 않고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온 것이었다. 우리 동네는 연못과 도랑이 많아서 비가 오고 물이 불어날 때마다 물고기를 길에서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 한 마리가 보이면 모두 다 모여서 위쪽과 아래쪽, 왼쪽, 오른쪽 물고기가 도망갈 틈도 없을 만큼 사방을 막아 보았다. 하루 종일 잡은 물고기 10마리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1마리나 될까 해서 하나를 가지고 뿌듯한 기분으로 각자의 집을 돌아갔다. 먹을 수 있을 찌 없을지를 알 수 없어서 그냥 장난감처럼 놀고 지루할 때까지 구경하기만 하다가 다시 놓아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에 젖었기 때문에 나는 열이 난다든지 감기에 걸린다든지 아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핑계도 대지 못하고 반항도 못해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을 때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양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지, 병이 다 낫기만 하면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해 비를 맞아도 상관없이 또 친구를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우리는 항상 그런 식으로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들고 또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에 심심한 일이 하나도 없도록 날을 재미있는 일만으로 꽉 채우려 했다.

비가 아직 내리고 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컸는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비가 오면 그런 추억들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다 어리석고 사소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만 생각나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옛날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컸는데도 어린 시절의 그 모든 추억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니까 내 마음이 새삼 젊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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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겨울을 보내면

나는 장갑을 안 끼거나 손을 주머니에서 잠깐이라도 빼면 바로 얼 것 같은 한국의 한겨울을 처음을 경험할 때가 생각난다. 날씨가 영하까지 내린 적이 한 번도 없는 베트남에서 온 내가 그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까. 난방 덕분에 그 동안 잘 지냈다고 할 수 있겠다. 밖으로 나갈 때만 춥지, 어디든 방에 들어가면 썰렁한 느낌이 들 뿐이고 곧 몸이 따뜻해졌었지. 길을 걸어가다가 어디에선가 불어온 바람결에 추워서 위축될 때 우리 가족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었는데.


베트남 하노이


● 집이 그리워진다

베트남은 한국만큼 춥지는 않더라도 추워지면 사람들이 옷을 잘 챙겨서 따뜻하게 입어도 온몬을 떨게 할 정도의 추위는 있다. 베트남은 아직 한국처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형편이 좋은 가정만 난방이 있고 우리 집과 같은 경우는 겨울이 찾아오면 밖에서든 집에서든 옷을 여러 겹으로 입어야 된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어머니께서 밥을 하고 계시는 부엌으로 막 달려간다. 불길이 어른거리는 아궁이 앞에 앉아 손을 쬐거나 해도 그렇게 따뜻해질 수가 없다. 어떤 때는 수업 시간 후에 추운 데다가 배가 고픈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서 김이 아직 무럭무럭나는 따끈한 그릇, 국..... 어머니가 이미 밥상에 차려 놓은 것들 보면 더 기뿐일이 없다.

우리 집은 3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생활은 거실에서 한다. 모든 식구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같이 보면서 웃음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겨울의 추위를 쫓아내 주는 방법 같았다. 우리 자매는 5명인데 둘로 나누어서 침대 2개에서 잤다. 이불로 덮고 서로 안아도 추우면 다 같이 한 침대에서 자게 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숨을 쉴 틈도 없을 정도로 너무 좁고 이불도 필요없을 정도로 더워도 아주 더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로 안고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언니들, 동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돌이켜 보니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언니들과 동생과 슬픈일이나 즐거운일이나 다 나누었던 그 어린 시절로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네. 올해도 아주 추운 겨울이 베트남을 찾아갔다는데 나는 한국에 있고 셋째 언니는 일본에 있어서 우리 가족들이 다 같이 보내지 못했지만 조만간에 옛처럼 거실에서 추운 겨울 밤에 식구들이 애정과 따뜻함을 느끼면서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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