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일리야 (러시아)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였다. 러시아에서 몇 년 동안 한국어를 배웠지만 한국에 와 보니까 교실에서 배웠던 것보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쓰는 언어는 완전히 달랐음에 너무나도 놀랐다. 내가 러시아 선생님과 책 보면서 꾸준히 외웠던 문법과 어휘가 많이 달랐고 갑자기 한국말로 둘러싸인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배경지식을 가졌더라도 처음에는 언어장벽과 부딪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 온 첫주에는 그때 같이 온 외국인 학생들의 환영식이 있었다. 내가 다니게 될 연세대 어학당에서 굉장히 멀다고 느껴졌던 시청역 근처에서 진행되었다. 이제 서울에서 10년 넘게 산 나에게는 이 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감당하기 힘들며 굉장히 길고 복잡한 루트였다. 지하철도 없는 작은 도시에서 온 나는 지하철 노선이 각각 다른 색갈의 의미도 모르고 환승이라는 말은 공포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환영식에 갈 때 우리 대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갔는데 다시 기숙사로 돌아올 때는 시간이 늦어서 셔틀이 끊겼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낮선 도시에서 집까지 어떻게 대중교통을 타지


공포의 순간이었다.

 




연세대쪽으로 가는 외국인 친구 한명도 없어 혼자서 신촌’ 표시 있는 버스를 탔다. 시청에서 신촌까지 거리가 얼마 안 된다고 머릿속에서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얼마 가야 하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를 몰랐다. 창밖을 계속 쳐다보면 연세대 캠퍼스가 보이겠지 해서 버스를 탔다.

 

그러나 피곤해서 그런지, 긴장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어느새 잠들었다. 2분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에 눈을 떠보니 버스 창문 밖이 어두움으로 덮여 있었다버스 안에서 나 밖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

 

공포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국말을 해야 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운전기사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어디예요?’


?’  아저씨는 나를 쳐다봤다.

 

너무 무서워서 한국말은커녕 러시아말조차 제대로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씨. 연세대학교지났어요?’

 

연대? 당연히 지났지! 학생 어디 가야 돼? 연대 지난 지 꽤 됐지

 

아저씨가 한 말을 전혀 못 알아들었다. 주변을 살펴보면서 다시 물어봤다.

 

아저씨연세대학교언제예요?’

 

아이구, 우리말 몰라 가지고 길 잃었구나! 학생 어디 가야 돼, 연대?’

 

저는연세대학교가야 합니다

 

아이구, . 연대 지난 지 꽤 됐다니까! 지금 여기서 내려 갖고 길 건너서 같은 번호 버스 타고 다시 신촌으로 감 돼. 저기 정류장 보이지? 거기서 다시 버스 타고 가라고

 

?’

 

아이구, 다른 나라에서 와서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참이건 어떡하지?’

 

기사아저씨는 머리를 돌려서 텅 빈 버스 안을 봤다.

 

, 앉아’. 아저씨는 나를 좌석에 앉히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아이구, 어떻게외국인 유학생인가 보다, 길을 잃어 가지고…’

 

아저씨는 버스번호판을 끄고 버스를 돌렸다. 그리고 연세대 정문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아이구, 다음번에는 번호를 꼭 확인하고 버스를 타요! 외국인 학생은 참 한국말도 서툴러서…’

 

버스는 떠나버렸다. 밤중에 연세대 정문 앞에 서 있는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말도 못하고 기숙사로 향했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나와 한국의 감동적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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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ism은 주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국어 웹진입니다. 천차만별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 속의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국제학생의 관점에서 생활과 문화,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ntact Me: 운영자메일주소




  1. 이수연

    2014.08.11 22:13 신고


    정말 훈훈한 이야기에요~! 정말 흔하지 않은 기사님을 만나셨네요 ~!

  2. 수리덤

    2014.09.17 23:50 신고


    잘 봤습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저도 그런 경우가 한 번 있긴 했지만 걍 택시타고 왔는데, 직접 데려다주시다니 정말 좋은 기사님을 만났네요! 그런 기사님 만나기 정말 쉽지 않거든요. 앞으로도 행운이 가득하길 바래요^^

글쓴이: 일리야 (러시아)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백인인 외국인을 보면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받침해 주는 역사적 · 문화적 · 사회적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미국인이라고 항상 대우를 받는 나는 매번 속상하기도 하고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다. 한국 TV나 수많은 어학원 광고를 보면 외국인을 만날 때 hello라고 인사하자!'고 하는 것은 대부분이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에게는 "왜 '헬로우'라고 인사를 해야지?"라는 질문을 한국인에게 던졌더니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외국이면 무조건 영어'라는 잘못된 개념을 고쳐야 할 때가 2014년인 지금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이태원 악세사리 가게에서 일하는 판매원과 재미있는 대화가 있었다. 내가 물건을 보면서 가게를 돌아다녔는데 40대중반처럼 보이는 아주머니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총각 잘 생겼어요

«, 감사합니다»

«아이구 참, 한국말도 잘하시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 살면서 매일매일 듣는 질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귀에 박힌 인사였다. 보통은 러시아에서 왔다고 바로 알려주고 주제를 바꾸곤 했는데 그날따라 네번째로 들은 질문이라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바로 답을 안 했다.

 

«어디서 온 같아요

아주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바로 답을 했다.  

«미국». 그녀의 말에는 아무런 의심, 아무런 의문의 흔적도 없었다. 누가 봐도 틀림 없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

미국 아닙니다

미국 아니라고?”

, 미국 아닙니다

진짜 미국 아냐?”

, 진짜 아니예요

그러면 어딘데?!”

이 질문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넓고 넓은 지구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있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이 아주머니에게는 신비롭고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던 것 같았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왔죠

아주머니는 5초 동안 열심히 생각하고 중학교때 지리학 수업을 기억하려고 하는 노력이 얼굴에 쓰여 있었다.

독일

아닙니다

프랑스

아닙니다

영국

아닙니다

유고슬라비야

뜻밖의 답이었다. 유고슬라비야라는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진 지 10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그것도 아닙니다

캐나다

아닙니다

15분 후에는 유럽, 북미, 남미…  안 부른 나라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세계지도 지식 수준은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신기한 일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인 러시아를 안 불렀다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

아닙니다

총각, 도대체 어디서 왔어? 내가 다 불렀잖아!”

제 나라를 안 부르셨는데요…”

 

아주머니는 꼼꼼히 5초동안 나를 다시 살펴봤다.

네팔

. 내가 네팔사람처럼 생겼어요?!

저 어떻게 네팔사람이에요! 백인인데…”

나야 모르지! 어디서 왔어?”

러시아에서 왔습니다

아아아! 러시아! , 북극에 있는 나라!”

북극에 있는 나라라니요!”

그럼? 러시아까지 얼마 걸려?”

제가 사는 블라디보스톡까지는 1시간반 정도 걸립니다”.

?!”

그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새로운 정보였다.

“1시간반?? 러시아는 유럽쪽에 있는 나라가 아냐?”

유럽쪽도 있고 아시아쪽도 있죠. 러시아는 큽니다”.

아주머니가 내 말을 믿지 않은 것이 눈에 확실히 보였다. 평생동안 러시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 왔던 이 아주머니의 생각은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가게에서 기분 좋게 나왔다. 오늘은 외국인이 백인이면 무조건 미국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최소한 한 사람 머리에 심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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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체카

    2014.03.25 12:43 신고


    ㅋㅋ 옷으면서 잘 읽었습니다.

  2. 이하은

    2014.07.25 04:23 신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외국사람들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모른다고 속상해하다가 요즘 한류로 알려졌다고 기뻐하는데 정작 우리는 더 외국에 대해 아는게 많이 없던 거 같아요. 뭐.. 그동안 외국인이 한국에 많이 없었기 때문에 우물안의 개구리였지만.. 이제는 우리도 이 넓은 세상을 차츰 알아가겠죠?

  3. 미정

    2014.07.27 00:29 신고


    허를 찔린 느낌이다. 내가 미처 감지 못한것을 일깨워준 일리야씨께 감사드립니다.

  4. 채세령

    2014.07.31 00:24 신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가면 일본인 중국인 소리 많이 듣는다던데, 아무래도 인지도의 차이도 잇지 않을까요?? 웃음이 계속 나오네욯ㅎㅋㅋ잘보고 갑니다!

  5. 이수연

    2014.08.08 13:45 신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읽기전에 미리 러시아 라는 힌트가 없었다면 저도 글 속의 아주머니와 같이 반응했을것 같아요 .. 다음부턴 러시아도 염두에 두겠습니다. 이태원 아주머니니까 네팔 아르헨티나 까지 나오는거지 평범한 동네 였으면 거기까지도 안나왔을거에요 ㅎㅎ

  6. 정연금

    2014.08.11 01:52 신고


    옛날 냉전시대의 오고 갈수 없는 나라였던 '소련'을 기억하는 중년 이상의 세대에겐 러시아가 아직 멀게만 느껴지지요.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7. ㅋㅋㅋㅋㅋ

    2014.08.21 03:19 신고


    이 글이 젤 재밌어 ㅋㅋㅋㅋㅋ

  8. shiho4869

    2014.10.15 23:02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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