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익어가는 가을과 함께 한국 고등학생들의 수능이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수능시험이 11월이지만 중국은 6월이다.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 수능 시험을 치뤄야 하는 고등학생들이 품은 생각들은 국가, 도시를 막론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수능시험이 어쩌면 인생을 결정짓는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대학교에 대한 여러가지 동경(憧憬)들, 지긋지긋한 주입식 교육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 등을 품는 것 말이다. 중국에서는 수능시험을 고등시험(高考)라고 부른다. 내가 고등시험을 본 것이 이미 5년전의 일이지만 추억을 되살려 그 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210일(7개월)전:


중국의 수험생들이 공식적으로 고등시험을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가는 것은 7,8개월 전부터이다. 콩크리트바닥이 무더위 때문에 녹아내리는 듯한 지겹도록 더운 고2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올곶이 반납하고 정말 말 그대로 초광속으로 모든 과목의 수업 진도를 마친다. 숨돌릴 틈도 없이 또 2년동안 배운 내용의 총 복습단계로 들어간다.


150일(5개월)전:


이때는 이미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이다. 이젠 학생들은 매일매일 고등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모의 연습 문제"더미"에 쌓여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교실에서 "중노동"을 한다. 아침 자습시간 7시에 시작해서 오전, 오후시간에는 각 과목 별 전날 과제 해답을 풀이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6시부터 10시까지 야간 자습시간이 이어진다. 통계를 해 보면 하루의 15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렇게 학생들은 시험지를 푸는 로보트처럼 산더미와 같은 문제집들을 안고 밤낮을 보내는 것이다.


100일전:


그러나 한편으로, 이 시절이 고등학생의 가장 인상에 남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오히려 이 시절이 제일 단순하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에게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즉,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이때에는 입시시험을 위해 싸우고 있는 학우들 사이의 우정의 꽃이 그 어느때보다 화려하게 피여난다. 그것은 똑같이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는 연대감에 의해 단단히 뭉쳐져 있는 것이고 깊은 깊은 친밀감과 함께 지속된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공부가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의 친척분도 그렇고 특히 부모님께서 수험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몸과 뇌에 좋은 보약, 음식 등등 사서 수험생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제공되고 용돈도 많이 받을 수 있다. 또한 입시 시험만 끝나면 영원할 것만 같은 자유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충만한 기대감에 의해 모든 것이, 입시를 위한 시험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정말로 풍성한 상차림처럼 황금빛 같은 가을과 함께 수험생들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50일전:


이젠 모의시험도 여러 번 치뤘고 학생들의 지식축적은 한계에 다달았다. 남은 시간동안은 여전히 많은 연습문제집과 씨름 해야 하지만 이젠 컨디션의 유지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학우들 간의 '이별'을 위해 친구들끼리 쉬는 시간을 틈 타 학교 곳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서로 책자에 기념을 남기기 위한 메시지를 적어 준다. 그것을 동학록(同學錄)이라고 하는데 나이 들어서 이 책자를 보는 재미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30일전:


마침내, 또 다시 여름이, 가장 무거운 인생의 첫 시험을 치뤄야 하는 여름날이, 6월의 가장 긴 2일이 30일 앞두고 다가왔다. 졸업 앨범을 찍고 졸업식을 치르고 등등 행사 때문에 수험생들은 뒤숭숭해진다. 또 수험생들은 지원하고 싶은 대학교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기존의 모의 성적을 기초로 해서 학교를 찾고 전공을 선택한다. 많이는 이 기회를 빌어 다른 지역의 학교로 지원하고 싶어 하고 중국의 큰 도시로 지원하고 싶어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수험생들은 시험 전에 지원서를 작성했지만 이제는 정책이 바뀌어 시험을 치르고 나서 지원서를 작성하게 됐다. 그래도 학교가 워낙 많고 또 수험생수가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지원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D-Day: 6월, 7,8일


드디어 고등시험 치르는 날이 왔다! 3일동안 부모님들과 친지분들은 시험장소 밖에서 하루 종일 땡볕을 무릅쓰고 수험생들과 함께 지새운다. 이 날만큼은 모든 수험 장소 주변의 교통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차들의 경적소리가 금지된다. 언론에서도 실시간으로 교통상황과 수험장 상황을 보도하고, 전체 도시가 팽팽하게 긴장돼 수험생들의 숨결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것이다. 오전과 오후에 한 과목씩 고등시험을 보게 되고 시험장소에 들어갈 때마다 수험생 한사람 한사람 검열을 받고 들어간다. 이렇게 매연이 없는 2일간의 전쟁이 치뤄지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시험이 끝나면 이젠 풀린 단말마와 같은 대부분의 도시 고3 청년들은 갖가지 파티와 꿈속으로 자유라는 독주가 출렁출렁 채워진다. 그들만의 축제가 여름밤을 취하게 만들고 그렇게 3주를 보내고 나면 도시속의 수험생들도 차츰 제정신이 들면서 일상의 굴레로 빠져들게 된다.


글쓴이: 최정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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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한글 사랑이 대단하다. 한글날이 국가 휴일이 될 만큼 말이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한구 드라마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한글 창제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비록 이 드라마와 한글 창제의 역사가 얼마나 유사한지는 입증할 수 없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한글도 그렇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세종대왕이 참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 사람들도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우리말"이라고 수식할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예를 들어, 영어권 나라, 혹은 중국에서는 자기들이 쓰는 언어를 '우리'라는 말로 잘 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한글 사랑이 남달라도 내가 보기에는 역설적인 몇 가지 현상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역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국인들은 영어화된 용어를 계속 만들어내고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단어들은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니다. 한국어는 표음 기제에 속하는 언어라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역설적인 부분은 한국인들이 영어화된 어휘에 대해서는 별로 반감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반면에 일본어 외래어, 혹은 중국어 외래어(한자어)에 대해서는 정확한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지적하고 "축출"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는 점이다.

글로벌화된 흐름을 역류할 수 없으니 영어 외래어가 많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 역설적인 것은 한국인들이 한글 사랑이 각별해도 영어 외래어를 괜한 장소, 혹은 상황에서 스스럼없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권에서 온 외국인들은 또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 외래어를 알아 듣지 못한다. 그리고 굳이 꼭 영어 외래어로 하지 않아도 되는데, "더 멋지다", "더 있어 보인다" 하면서 사용할 때 그렇다. 그럴 때면, 한국인들의 한글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예를 들어, 이 글의 제목이 "한국인들의 한글 사랑 역설"보다는 "패러독스"를 씀으로써 더 많은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영어권 외국인들은 "패·러·독·스"라고 말하면 "what!?"하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인들은 일본어를 어원으로 하는 어휘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이다. 한번은 같이 사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닭도리탕을 만들어 먹게 됐다. 그 친구는 내가 자꾸 "닭도리탕"이라고 말하자 "닭도리탕은 일본어야. 정확한 우리 말로는 닭볶음탕이라고 해야 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닭볶음탕"을 만드는 내내, 내가 "닭도리탕"이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아니라니까, 닭볶음탕이라고" 하면서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어 외래어를 사용할 때마다 지적을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한국인들이 식민지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trauma)를 가지고 있어서 더 한글에 뿌리 박힌 일본어 단어들을 뽑아내려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런 행위들이 꼭 한국인들이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 단어라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자기 언어에 대한 자부심은 민족감정과 글로벌화된 흐름 가운데서 가끔 역설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글쓴이: 최정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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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8 14:19


    비밀댓글입니다


한국은 정말 친절한 나라다. 한국인도 친절하고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친절"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가끔 이와 같이 몸에 밴 그들의 친절이 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심한 착각'에 빠트릴 때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또는 한국인들의 친절의 양면성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겪은 일들로 풀어보려고 한다.



한국의 친절함은 한국인들의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성격으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라고 안내해 주는 것. 또 특별히, "이 지하철역은 승강장 사이가 넓음으로 내리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해 주는 것이 그렇다. 이 안내를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시스템을 구축할 때 이것까지 생각해서 프로그래밍을 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런 안내는 시각 장애인들한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버스에 승차할 때,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교통카드가 오작동될 때 깨알같이 "카드를 한 장만 대 주세요", "잔액이 부족합니다", "이미 처리되었습니다" 등등 여러가지 상황을 대비한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국의 친절한 전자 시스템은 정말 흥미롭다. 사회 인프라를 만들면서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두 생각하고 만든 것은 한국만이 가지는 하나의 독특한 친절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이 인프라뿐만 아니라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의 친절을 또한 어디서나 감지(感知)할 수 있다. 붐비는 지하철이지만 그렇다고 노약자석에 앉는 일반 승객은 없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가끔 그렇게 비어 있는 노약좌석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안내원 아저씨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모든 "문제"를 20초 사이에 해결해 줬다. 어디서 버스를 타고, 몇 번을 타야 하며, 요금은 얼마고, 내가 타는 버스는 배차 시간은 얼마 동안인데 아직 10분이 있고 밖은 추우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안내했다. 나는 연거푸 "네, 아 네, 아... 네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 아저씨 말씀대로 거기서 꼼짝 않고 서서 기다렸다. 처음 한국에 도착한 나라로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는데 걱정했던 일들이(길을 물어보는 것도 아주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너무 쉽게 해결돼 적잖은 감동을 받았었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불쌍한 마음에 아저씨가 잘해 준 건가?

그런데 이런 친절이 가끔 오해를 낳기도 한다. 기숙사에서 살 때 함께 중국 유학생 친구 A랑 수다 떨다가 그녀의 "짝사랑"을 알게 됐다.

A와 함께 언어 교환을 하는 한국인 남학생이 있는데 A는 남학생이 자신한테 너무 잘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어떻게 잘해 주는지 말해 봐"

나는 아주 달콤한 애정행동을 생각했지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하루 종일 풀(full) 수업을 하고 잔뜩 피곤했거든. 그리고 그 남자애랑 언어 교환하는 날이라서 같이 저녁을 먹는데 바로 내가 피곤한 걸 눈치 채고 나의 가방을 들어 줬어"

"...또?"

"너무 센스 있지 않아?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남학생들은 한번도 그런 적 없어. 그리고 또 한번은 같이 길을 걷고 있는데 차가 온다면서 길 안쪽으로 걸으라고 그랬어"

"엉?! 너무 시시한데? 그래서 좋아한다고?"

나는 이 여자애가 혹시 그 동안 애정결핍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

"나에 대한 호감이 없다면 이렇게 잘해 주지 않을 거야!"라고 그녀는 내 반응이 못마땅한지 급하게 내뱉었다.

착각은 자유인데 이건 좀 너무 현실과 거리가 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머지 시간 동안 그녀에게 넌 착각하고 있으며, 그 한국인 남학생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단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예의"에서 출발한 아주 평범한 "친절과 매너"의 표현이라고 길게, 길게 설명해 줬다. 그녀는 그 남학생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인 남학생들이 "메너"있고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좀 착각하게 만든다는 지점에서는 동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인 혹은 한국 사회의 친절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착각을 낳을 때도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놀랍기만 하다.

글쓴이: 최정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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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것은 얼추 2년 전인데 그때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일을 여기에 적어 보려 한다. 길가에서 "삼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책가방을 메고 있는 생머리 "언니"들이 모여서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그것이다. 한국에는 정말 담배 피우는 "언니"들이 많다. "언니"들의 모임장소는 대부분 학교 뒤 뜰이나 한적한 공터, 혹은 카페의 흡연 구역 아니면 공공장소 화장실이다. "언니"들의 포스(pose)가 하도 위압감을 줘서 오히려 그것을 충격적으로 생각하는 내 자신이 주눅 들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 학교 뒤뜰에서 담배 피우는 "언니"들을 만나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걸었다. 학교 근처에서 많이 보니 주로 여대생들이 담배 피우는 것일 테고 얼굴 보고 추측하건대 20대 초반 여자애들이다. 카페에도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 구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거기서 젊은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자주 본다. 언제부터 그리고 왜 한국 사회 젊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지가 궁금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언니"들이 담배 피우는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인체에 해롭지만 중독성 있는 제품들이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커피가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커피에 중독되어 있고 커피를 많이 마시면 안 좋은 건 알지만 그래도 마신다. 그래서 담배가 나쁜 줄 알면서도 피우는 "언니"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개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그 해악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고 따라서 동시에 적당함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그렇다.

그러나 왜 많은 한국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게 되었을까? 한번은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7살짜리 소녀가 가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와서 담배를 구매한 적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확인해야 한다. 그 친구는 얼굴에 짙은 화장을 했고 주민등록증에 나이도 21살로 되어 있어서 요구하는 담배를 건너 줬다. 그러나 사후에 이를 지켜봤던 한 남학생이 저 친구는 자기랑 같은 학교인데 17살밖에 안되었고 주민등록증이 가짜라는 증언을 해 줬다. 그래서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내가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왜 그 친구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담배를 피울까? 그 여학생은 담배를 정말 좋아해서 피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그 밖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담배 피우는 기타 동급생 친구 "언니"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사회는 집단과의 결속을 많이 요구하는 사회인 것 같다. 예를 들어서, 학교 MT, 개강파티, 종강파티, 동아리 회식, 동아리 MT 등등, "조직"의 연대와 결속을 위한 다양한 "풍토"가 있다. 특히, 엄격한 선후배 사이 문화도 그런 측면을 담고 있는데 만약 이런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라면 "왕따"로 되거나 "외톨이"가 된다. 그래서 MT에 가면 선배가 권하는 술은 무조건 비워야 하고 깍듯이 인사해야 하고 만나면 꼭 먼저 안부인사를 해야 하는 "(rule)"들이 있는 것이다. 이건 나이에 기초한 관계인데 그럼 동급생들끼리는 또 어떻게 연대를 형성하는가? 그 가운데 하나가 "담배" 모임인 것 같다. 쉬는 시간을 틈타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통한 공감대와 우정을 키울 수도 있다. 혹은 담배 피우는 행위 자체가 그들 사이의 연대의 징표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다른 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이 담배 피우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일반적인 인식이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가인데 어렴풋한 추측이긴 하지만 파리 여성들의 문화적인 생활을 본뜬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파리지앙의 삶과 문화를 본뜬 행위들이 한국 여성들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타 문화에 대한 추종은 한국 사회  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나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몸에 안 좋은 겉멋을 본뜬 것은 좀 피해야 되지 않을까?

담배 피우는 "언니"들이 왜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간단한 생각을 적어 봤다. 개인적인 소감이고 추측일 뿐이다. 얼마든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복합적인 원인이 혼합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최정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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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군

    2013.10.05 12:43 신고


    한국어 진짜 잘하시네요 ㅠㅠ 내중국어는 언제 늘까

  2. 김유진

    2013.10.05 23:14 신고


    제가 중국에 갔을 때 깜짝 놀랜 게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 담배피던 엄마(?)였는데;;
    한국에 담배피는 여자가 많이 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여성흡연률이 높아지고 처음 접하는 연령대도 낮아졌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중국은 어떤가요?
    일본은 길거리 자판기에서 아주 손쉽게 담배를 판매하고 있던데요?

    흡연인구가 많아진 건
    아마도 흡연이 개인의 기호식품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널리 퍼진거겠죠?
    흡연이 나쁜건 모두 다 알지만 그럼에도 하려 하는 건
    개인의 선택에 의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걸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
    그들이 비흡연자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런 비매너적 행동에 대해선 단호히 경고를 해야 합니다만,,,

    • 최정연

      2013.10.05 23:40 신고


      김유진님 말씀이 맞아요. 중국 일본 한국 모두 흡연 여성이 많아지고 있고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글에서도 말했다 싶이 한국 흡연여성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고 명시했고 단지 왜 그리고 언제부터 한국 여성들이 흡연하게 되었고 그 사회적 맥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 나름의 생각을 적었습니다. 김유진님 말씀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당당하게 말해야죠. :)

  3. 김유진

    2013.10.06 00:09 신고


    여성의 흡연률이 높아진 건 서구권이나 아시아권이나 전부 여성인권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탈선하는 청소년들의 수위가 높아지는 건 그들이 무분별한 불건전 정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겠죠?~이를테면 제어가 쉽지않은 인터넷이라던가,,
    그 나이대 호기심에 접하고 픈 충동을 느끼는 학생들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도하게 되고
    그 이후 그런 무리의 친구들과 어울려 그들만의 공감대를 위해 더 깊은(?)탈선의 길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그건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걸 한국 특유의 결속(?)문화로 보지 않습니다만,,

    중국은 어떤가요?

    중국도 탈선하는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끼리만 어울리지 않나요?
    중국은 어떠 계기로 여성의 흡연이 늘었는지,,궁금하네여~

    • 최정연

      2013.10.06 02:04 신고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특히 "담배"피는 행위를 통해 연대감을 나누는 청소년들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사회에 대해서 쓴 글이긴 하지만 상기한 문제점이 절대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강조 하고 싶군요. 중국에서도 당연히 김유진님께서 서술한 이유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원인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흡연 여성들이 늘었겠죠. ^^

    • 최정연

      2013.10.06 02:13 신고


      그러나. 한국인들의 "결속"문화- 조직적 연대와 친밀감을 "강요"하는 문화는 독특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특히 선후배 사이의 엄격한 서열을 정하는 암묵적인 "예의범절"이거나 "술"문화가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따라서 담배 모임이 그 가운데 한 현상이라고 분석한것은 또 제 나름의 생각이구요.

  4. 2013.10.06 06:31 신고


    한국의 여성인권이 신장됨에 따라 담배피는 '언니'들이 늘어났다는 말에 동의해요. 다만 유독 담배피는 '여성'을 안좋게보는 경향이 한국에 있는데 이는 당당하게 흡연하는 서구권 여성들과 비교해 보면 다른 양상을 보이는것 같아요.
    한국 특유의 결속문화 댓글 부분에선 많은 공감이 가네요.

  5. 김유진

    2013.10.06 12:39 신고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함께 있는 게 더 나쁜 거 같은데요?
    중국에 한 달정도 일 때문에 머물면서 이해 할 수 없었던 건,,
    옆에 아이가 있 건 없 건,남여노소 불문 비흡현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흡연문화였습니다.
    모든 중국 사람이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저도 한국인의 결속문화 인정합니다
    근데 담배 모임을 그런 결속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여전히 생각되네요~
    일전에 썼듯 비흡연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행동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사람이라면,,그런 모임에 끼기 위해 일부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치만 술 문화는 진짜 바꿔야 한다는 점 동의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담배피는 여자들이 는 건 파리지앵의 문화를 따라하려는 건 아닙니다.
    여성의 여권신장과 더불어 사회적 진출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그에 따른 반대급부의 한 현상입니다!서구권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이제야 한국도 서구권 여성들처럼 남성들과 대등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요?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교육으로 남녀평등교육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도 표면적으로 그렇긴 했습니다만 유교주의적 가치관으로 인해 우리의 어머니들은 남녀차별을 겪었고 여성의 교육이나 사회진출이 더딘 나라였습니다!!그렇기에 지금의 여성흡연에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저도 여성의 흡연을 반대하는 사람이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한국여성만 흡연하는 것을 파리지앵을 따라하려는 겉멋 든 행위로 표현 한 부분이 좀 맘에 걸렸습니다! 정연님이 마지막에 지적한 것처럼 얼마든지 다른 요인 이유들이 있었을 텐데요~
    무튼 타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또다른 면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의 중국집 요리는 중국 요리와 전혀 다르다. 짜장면 혹은 짬뽕이 역사적 유래에 대해서 면밀히 따지면서 왜 그것을 중국 요리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이에 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한국의 중국집 요리는 한국 음식 카테고리에 속해 있지, 중국 음식과는 별개인 것은 변함이 없다.

우선 한국의 중국집 음식이 왜 중국 음식이 아닌지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들도록 하겠다.

 

1.) 중국 음식의 지역적 다양성

첫째, 중국 음식이라는 통념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 또는 도시 단위로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음식들이 다양하게 있고 천차만별인데다가 또 대중 음식 (시민들의 평일 음식), 명절 음식, 특산물 요리, 민족 음식(공식적인 56개 소수민족을 지칭함)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콕 찍어 '이것은 중국 음식입니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무리이다. 오히려 '이것은 중국 어느 지역의 음식입니다'가 보다 범위를 좁힌,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김치는 한국음식입니다'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지역 구분 없이 김치라는 요리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음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중국에서는 짜장면이 한국 음식이다

둘째, 한국의 중국집 음식이 중국 동북 지역에서는 오히려 한국 음식의 대표로서 소비된다는 점이다. 중국 동북 지역 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지역에서 특히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가 한국의 중국집 음식이다. 다른 한편, 중국 음식 중에 면으로 된 음식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없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본인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법의 차이를 놓고 볼 때, 한국의 중국집 음식인 짜장면은 익힌 면에 특별한 소스를 얹고 비벼서 먹는 방식이다. 그러나 중국 음식의 면 요리는 볶음 방식이 주된 요리법이다(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다양한 재료들의 조합으로 만든 볶음 요리가 대중화된 반찬이다). 수프(soup)와 함께 나오는 면은 요리방식은 같으나 수프에 들어가는 재료, 그리고 맛을 내는 조미료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르다.

한국의 중국집 대표 음식인 탕수육을 다른 한 예로 들면 중국에는 탕수육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요리가 있다. 요리 이름은 꿔보우로우(包肉)인데 먼저 돼지고기에 밀가루 반죽을 살짝 입히고 기름에 튀긴다. 그 다음 설탕과 식초로 만든 소스에 잘게 썬 파를 곁들여 강한 불로 녹여내고 튀김 고기와 함께 볶아서 마무리한다. 한국의 탕수육은 밀가루반죽을 입힌 튀김 고기에 당근, 양파를 곁들인 달콤새콤한 소스를 부어서 먹는다. 두 요리의 튀김 고기는 모양도 다르고 씹히는 질감에도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탕수육과 꿔보우로우는 전혀 다른 두 요리로 구분하는 것이 마땅하다.

 


탕수육

 

3.) 한국에서 먹는 '중국 음식'의 맛은 한국 음식 맛이다

셋째, 한국 음식은 대부분 담백한 맛, 단 맛(한국의 모든 요리가 단 것 같다), 매운 맛(청양 고추, 고추장, 김치 등), 구수한 맛, 고소한 맛(참기름) 등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하여 (시장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나라별 요리들이 위에 말한 한국인 입맛을 기준으로 조리법이 크게 조율(tuning)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고장의 맛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처음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몸무게가 10kg 빠졌다.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은 것도 있고 중국 음식은 많이 기름진 편인데 한국 요리는 그렇지 않아 자연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중국집 말고 정통 중국 음식을 하는 맛집에 찾아가면 대부분 '변형된 중국음식'이어서 실망했다 (그러나 몇 곳은 정말 맛있는 집도 있다). 그래서 아예 집에서 스스로 요리해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

 

지금은 한국 음식에 길들어져 잘 먹고 잘 산다. 그러나 가끔 친구들과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 비울 때 꼭 하는 생각이 '이건 중국 음식도 아닌데 왜 중국 음식이라고 부르지?'이다. 음식을 즐기면 되지 이름이 적절한지, 아닌지가 중요하냐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중국 음식' 할 때 만약 떠올리는 요리들이 중국집 요리(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등)라면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인식에 대한 지적이 사람들이 중국집 음식을 즐기는 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 한국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 음식에 적용되는 사항이겠지만 만약 그 나라의 정통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직접 현지에 가서 먹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미식가들처럼 이와 같은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그 지역에서 온 사람이 만든 요리를 먹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글쓴이: 최정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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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ke of shaman

    2013.11.25 23:45 신고


    한국에서 말하는 '중국 음식'은 현지 중국의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님께서 얘기하셨 듯 변형된 '중국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광의적 언어 개념에서 일상에서 으레 말하는 것일 뿐. 중국 음식이라기 보다 사실 한국 음식이죠.

  2. 멍멍

    2013.12.02 09:45 신고


    맞아. 교환학생들 따라서 진짜 중국음식점에 가니까 완전 다른맛 ! 저는 쯔란 (?) 이라는게 맛있더라구요

    • 소리

      2013.12.21 05:05 신고


      중국음식의맛. 오랜중국의문화와역사. 그신비로움에빠지지안을수없지!^^

요즘은 집집마다 컴퓨터와 TV, 그리고 개인이 휴대하고 있는 핸드폰으로 소일한다. 이런 엔터테인먼트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설계한 디자인 및 내용이 넘쳐나게 있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삶을 얼마만큼 바꿔 놓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여기서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명석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에 관한 찬반담론을 가지고 많은 글들을 썼고 탄탄하게 구성한 논리로 독자들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다만 난 여기서 나만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젠 많은 사람들한테 잊혀진 옛모습을 들춰내 그 시절을 거울로 삼아 지금을 비춰 보고 싶은 것이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도심의 장터에 가면 군데군데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구경거리가 났길래 이목을 끄는지 궁금해서 살펴보면 그 구경거리란 장기(將 棋)를 두는 사람을 에워싸고 벌어지는 장기판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중년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장기판을 에워싸고 장기를 둔 사람이 방금 놓은 한수에 대해 구경꾼들이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시끌벅적하다. 또 기수(棋手)가 생각에 잠기면 모두가 조용히 지켜보면서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장기 한 판이 끝나면 사람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악수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다음 새로운 '선수'가 교체되고 판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장기판이 길어지면 한나절은 지속되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놀이를 끝까지 지켜본다. 중간중간 급한 일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쉬운 얼굴을 하고 몸을 빼지만 이내 다른 사람에 의해 그 자리가 대체된다.



따로 주어진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길거리에 장기판을 펴고 사람들이 양쪽에 쭈크리고 앉아 장기를 둔다. 이를 중심으로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도 아니다. 동네에서 얼굴을 몇 번 마주친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낯선 사람들인데도 장기판이 벌어지면 형제라도 된 듯이 한 자리에 모여서 땅콩도 먹고 해바라기씨도 까고 침을 튀겨가며 논쟁하는 것이다. 아마추어든지 고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한결같이 벌어진 장기판에 열중한다.

장기의 성질은 외국의 체스(chess)와 비슷하지만 길거리에서 저렇게 장기를 두는 모습은 체스를 두는 문화권과 다른 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장기를 두긴 하지만 길거리에서 장기판을 벌리는 문화 풍경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지금은 고향에서 길거리 장기판을 보기 흔치 않다. 도시의 일관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금지되었을 수도 있고 위에서 말한 엔터테인먼트에 밀려 한 물간 놀이가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가끔 길거리 장기판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나친다. 그러면서 '그땐 그랬었지'라고 씁쓸하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 어린 시절 자주 보던 풍경 - 길거리 장기두기 - 을 기록하기로 했다.

지금에 와서 잊혀진 문화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기록은 어찌 보면 한 사물이 완전히 잊혀지기 전에 하는 의식(儀式)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 그것들이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글쓴이: 최정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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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인재

    2013.09.18 16:23 신고


    스위스 여행 갔을 때 비슷한 거 약간 본 적이 있어요! 공원 옆 길거리에 체스 판이 그려져 있고 되게 커다란 체스말들이 있구요, 할아버지들이 그 말들 옮겨다니면서 체스를 두시더라구요. 모여서 구경하는 중국 같은 분위기랑은 많이 달랐지만 ㅎㅎ

    • seoulism

      2013.09.21 12:18 신고


      스위스 할아버지들도 그렇게 체스를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스위스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하셨네요. 저도 서양에서 체스를 그렇게 두는 장면을 몇 번 봤어요. 제가 예전에 시카고에서 살았던 동네(하이드파크,Hyde Park)에는 맥도날드 바로 앞에 체스판이 그려진 테이블이 있어 가지고 할아버지들이 주말에 모여서 싼 커피 한 잔에 체스를 두고 수다 떠는 걸 많이 봤어요.

  2. Vera Icona

    2013.09.19 02:55 신고


    한국에서도 도심 공원 같은 데서 장기 두는 풍경이 흔합니다 ㅎㅎ

    • 최정연

      2013.09.19 20:42 신고


      그렇군요~ 아직도 있다니 한번 가서 구경해야겠네요

서울의 지하철역은 붐비고 다급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주중에도 그렇고 주말에도 어디를 향해 가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총총한 발걸음을 옮기면서 서로 어깨가 스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간다.

다만 목적지를 향하는 열차가 역으로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시간만큼 찾아오는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smartphone)을 만지작거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책을 보면서 잠깐의 '쉼'을 가진다. 이런 인파 속에서 나도 무심한 태도를 취하고 가만히 주변을 관찰하거나 낯선 도시 속의 여러 얼굴들을 흝어본다. 그러는 와중에 서울 지하철역만이 가지는 하나의 문화 풍경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 이 작은 풍경을 발견했을 때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이 무척 친근하게 다가왔었다. 얼른거리는 스크린 도어 유리벽에 길고 짧은 시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적혀 있는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 시민들의 작품들도 있는가 하면 유명한 시인들의 익숙한 시들도 보였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시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공공장소에서 하나의 큰 보물을 발견한 만큼이나 감동했었다. 그 후엔 짬짬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거기에 적혀 있는 시들을 살펴보곤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지하철역에 적혀 있는 시들을 묶은 시집도 시중에 출판되어 있다. 제목은 '행복의 레시피(recipe)'이다. 2010년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 지하철역 203개의 스크린도어 유리벽에 3,485개의 시가 부착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시의 이와 같은 문화 프로젝트는 향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지하철역 뿐만 아니라 버스정류소와 같은 공공장소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한글이 가지는 언어적인 미(美)를 퍼뜨릴 수 있는 한편, 또 보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것 같다.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에 적혀 있는 시들은 단순하면서 감칠맛 나기도 하고 재치 넘치는 시들도 있다. 또 자연을 노래하는 시들, 깊은 인생의 무게를 담은 시들 등등 여러 장르와 형식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시들로 가득한다. 한글만이 가지는 언어적인 색감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이 시들을 찬찬히 보고 음미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번뜩이는 화면 한 가득 쉴 새 없이 반복되는 광고들로 난무하는 도시, 그 중심에 차분하게 나눔 글꼴로 적혀 있는 시들을 여러분들도 한번 만나보기를 바란다. 열차를 기다리면서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조용한 말을 속삭이는 문화 풍경. 이는 유혹들로 가득하고 갖은 정보를 쏟아내는 모든 매체들을 압도하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본 시중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시는 이대역 10-3번 스크린도어에 적혀 있는 권갑점 시인의 시이다.


너무 멀리 가지 말아라. 내 마음 따라가기 힘들다.

그렇다고 침묵은 말아라. 네 마음 따라가기 더욱 힘들다.

- 권갑점 (이대역 10-3)


이 시를 본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즉석에서 메모 해 두었다. 이 시가 마침 그때 나의 심경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모순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시기였고 화해하려면 침묵의 얼음을 깰 필요가 있었지만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냉전을 지속하면 자찻 그 친구와 멀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를 보고 용기를 내서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따뜻한 안부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와 같이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새겨 있는 시들로부터 용기 혹은 지혜를 얻은 사람들이 꼭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이 가지는 이 독특한 문화 풍경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다.



글쓴이: 최정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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