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요즘 잘 지내세요? 

저는 저번에 일본과 한국의 축구 경기를 친구와 함께 보러 갔습니다. 

자국을 응원하는 관객의 열기가 경기장에 가늑 차 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아시아의 축구를 견인하는 두 나라의 국가대표가 다툰 경기는 한국이 맹공격을 가하면서도 이것을 견고히 수비한 일본이 종반에 골을 성공시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경기가 개최된 잠실종합운동장은 1988년에 개최된 서울올림픽에서는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실은 제 고향인 나고야는 서울올림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주는 올림픽에 관한 나고야와 한국의 인연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1981년 9월에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위원들이 투표한 결과, 서울시가 1988년 올림픽의 개최지로 뽑혔습니다. 그 때 서울시와 대결한 상대방이 나고야시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나고야는 일본의 네 번째 대도시였고 서울은 한국의 수도였지만 1981년 시점에서 비교해 보면 현재와 달리 나고야가 서울보다 발전된 도시였다고 추정됩니다. 게다가 민주주의국가인 선진국의 도시와 군사정권의 독재 하에서 성장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도시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대회운영능력이 높았는지는 분명히 전자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투표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압도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고향을 사랑하는 저에게는 조금만 억울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출된 뒤에 한국은 큰 혼란 없이 올림픽을 성공시키며 올림픽 이후에는 나라 전체가 크게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울은 나고야에 이겼을까요? 저는 유학 전부터 궁금하던 이 질문을 풀기 위해 올림픽공원에 갔다 왔습니다.



올림픽공원은 서울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원 안에 있는 서울올림픽기념관에서는 서울올림픽과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서울올림픽 초치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초치 과정에서는 서울은 나고야에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투표일까지는 나고야 우세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고야가 투표의 승리를 확신해서 해이해졌는데 비해 서울은 투표 직전까지 열심히 로비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 덕분에 서울은 역전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서울올림픽 유치 과정에 관한 책을 읽어 봤더니 역시 한국 사람의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 덕분에 승리했다고 합니다.



정신론만으로 서울이 개최지로 뽑힌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투표자의 마음을 흔든 것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의 정신력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고 존경할 만한 부분입니다. 지금은 도쿄가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입후보하고 있습니다. 도쿄는 나고야처럼 올림픽 유치를 실패하고 싶지 않다면 1988년에 서울이 보인 강인한 정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고 역사를 활용해야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오오이 히로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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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입니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고향은 나고야입니다. 나고야를 아십니까? 나고야는 혼슈의 아이치 현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나고야를 알고 있는 외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도쿄와 오사카, 교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나고야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조차 없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비교적으로 일본에 정통한 한국 사람도 이름까지는 들어 본 적이 있지만 나고야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한국 도시에 비유하면 마치 대구같은 존재입니다. 서울과 부산, 경주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외국인은 많더라도 대구에 대해서는 모르는 외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한 나고야입니다만 실은 한국과 깊게 관련된 도시입니다. 한국과 관련지으면서 앞으로 3주일에 걸쳐 나고야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나고야성


나고야와 한국의 인연

이번주 제가 소개하는 나고야의 특징은 피겨 스케이팅에 관한 것입니다. 피겨라면 한국 사람은 틀림없이 김연아를 떠올릴 텐데요. 김연아는 벤쿠버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우승한 등 여러 국제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국민적 스타입니다. 일본 사람에게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배용준을 웃돌아 김연아라는 대답이 가장 많죠.



반대로 한국 사람에게 알고 있는 일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떨까요? 아마 아사다 마오(浅田真央)라고 가장 많이 대답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사다 마오도 피겨 스케이팅 선수입니다.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는 유년 시절부터 서로를 의식하며 피겨에 절차탁마해 왔습니다. 한국 사람이 응원하는 피겨 대회에서는 항상 아사다 마오가 등장하고 한국 피겨 팬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아사다 마오뿐만 아니라 안도 미키(安藤美姫)도 한국 피겨 팬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입니다. 올해 7월 초에 안도 미키가 미혼모로서 아기를 출산했다고 일본에서 보도되자마자 한국의 유명한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는 '안도 미키'가 검색어 1위로 오를 만큼 한국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나고야 출신이라는 점이죠. 두 사람은 나이는 다르지만 나고야에서 태어나고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녔습니다. 연습장도 같은 연습장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실은 아사다 마오나 안도 미키 외에도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현재도 활약하게 피겨 활동하고 있는 고즈카 다카히코(小塚崇彦)와 스즈키 아키코(鈴木明子), 무라카미 가나코(村上佳菜子)도 나고야 출신입니다.


● 피겨 선수를 배출하는 나고야의 '나라이고토(習い事)'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일본 피겨 선수가 나고야에서 탄생했을까요? 추정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나고야에 과외문화, 혹은 '나라이고토(習い事)'가 있기 때문에 피겨 선수가 배출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나고야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러가지 과외활동을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서예와 체조, 수영 학원들에 다녔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여러 학습 학원과 음악, 야구, 축구, 가라데, 유도 학원에 다녔습니다. 이러한 예를 보면 과외활동에 바쁜 것으로 유명한 강남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맞먹을 정도로 나고야에서도 과외활동이 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학교 때 피겨 학원에 다니던 친구 한 명이 있었고요. 물론 피겨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많지 않았지만 나고야의 과외활동 문화 덕분에 피겨 학원을 다니게 될 기회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연장선 위에 아사다 마오나 안도 미키 등의 활약이 있었다는 설은 타당성이 있는가 봅니다.

위와 같이 나고야의 나라이고토가 피겨에서 성공을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고야에서 나온 인재들에게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나라이고토가 이제까지 좋은 효과를 미쳤다는 생각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나고야의 나라이고토는 앞으로도 피겨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인재를 배출할 것입니다.


글쓴이: 오오이 히로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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